[책마을] 느릿한 거북이, 불혹에 사춘기가 온다?

동물들처럼

스티븐 어스태드 지음
김성훈 옮김 / 윌북
396쪽|1만9800원

노화의 비밀 연구한 美생물학과 교수
최고 200년까지 살 수 있는 거북이
걸음뿐 아니라 성장·심장박동도 느려

체구 크고, 대사율 낮을수록 장수한다?
야생 조류는 포유류보다 3배 오래 살아
몸집 작고 재빨라…기존 통념 깨부숴
전문 분야 책이지만 유머로 쉽게 전달
바닷새는 장수한다. 지금도 살아 있는 ‘위즈덤’이란 이름의 바닷새 레이산 앨버트로스는 70세가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56년 챈들러 로빈스라는 조류학자가 위즈덤의 다리에 고리를 달아줬다. 46년이 지나 챈들러가 84세가 됐을 때 위즈덤을 다시 만났다. 노인이 된 챈들러와 달리 위즈덤은 여전히 팔팔했다. 새로운 수컷 짝을 만나 1년에 한 번 알을 낳았고, 원기 왕성하게 하늘을 날며 먹이를 사냥했다.

<동물들처럼>은 레이산 앨버트로스처럼 오래 살고, 나이가 들어서도 노화가 찾아오지 않는 동물들의 비결을 파헤친다. 저자인 스티븐 어스태드 미국 앨라배마대 생물학과 교수는 동물을 통해 노화의 비밀을 푸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 이 비밀이 풀리면 인간이 150세까지 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거북이는 장수 동물로 유명하다. 학자들은 땅거북의 수명을 150~200세 정도로 추정한다. 오래 사는 이유도 잘 알려져 있다. 대사율이 느리기 때문이다. 걸음만 느린 게 아니라 세포 분열도 느리다. 사춘기까지 도달하는 데 최대 40년이 걸린다. 심장은 10초에 한 번씩 뛴다. 그런데 인간이 오래 살고 싶다고 거북이를 따라 할 순 없다. 사실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도 대사율이 높은 편은 아니다. 체구가 비슷한 포유류와 비교했을 때 하루 에너지 소비량이 절반밖에 안 된다. 하지만 ‘빨리’와 ‘부지런함’을 중시하는 인간 사회에서 거북이처럼 느려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빠르고 부지런한데도 수명이 긴 동물이 있다. 새가 그렇다. 야생의 집쥐는 평균 3~4개월 산다. 애지중지 보살핀 실험실 환경에서도 3년이 최대였다. 반면 야생의 참새는 19년 넘게 살기도 한다. 시카고 브룩필드 동물원에 있던 한 앵무새는 2016년 83세의 나이로 죽었다. 비슷한 체구의 동물끼리 비교한 ‘장수지수’로 봤을 때 야생의 조류는 사육 포유류보다 세 배 오래 산다. 바닷새인 맨섬슴새는 체중이 450g밖에 되지않는 데도 50년 넘게 산다. 체구가 클수록, 대사율이 낮을수록 오래 산다는 통념이 맞지 않는 사례다.대사율이 높으면 ‘활성 산소’라고 불리는 산소 유리기가 많이 발생한다. 온갖 생물 분자를 손상하는 물질이다. 그런데 새의 세포는 이 유리기를 덜 만들어냈다. 나이가 들면서 힘줄과 인대를 뻣뻣하게 만드는 단백질 갈변 현상도 덜했다. 그 비밀은 아직 안 풀렸다. 연구도 미진한 편이다. 저자는 “의학 연구는 여전히 초파리, 생쥐같이 수명이 짧은 실험실 동물 종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 매몰돼 있다”며 “이런 동물들을 연구해서는 인간의 건강 수명을 연장할 방법에 대해 별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새만 ‘건강한 장수’의 비밀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왕개미와 일개미는 똑같은 알에서 태어난다. 유전적으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일개미는 6개월~1년가량 사는데 여왕개미는 20년 넘게도 산다. 과학자들은 세포 손상을 예방하고 복구하는 유전자 스위치가 켜져 있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코끼리는 큰 몸만큼이나 많은 양의 세포를 갖고 있지만 암이 잘 생기지 않는다. TP53이란 종양억제유전자 덕분이다. 사람도 한 쌍의 TP53을 갖고 있다. 세포 분열 과정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제 기능을 못 한다. 코끼리는 20쌍을 갖고 있다. 한두 개가 고장 나도 상관없다.

글로 읽어도 말솜씨가 그대로 느껴지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를 유머를 곁들여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