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되지 않는다' 자신하는 日 공무원…이유 있었다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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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역전패 당한 한국 인구문제 (11·끝)일본에 역전패 당한 한국 인구문제 (10)에서 살펴본 대로 홋카이도 히가시카와는 '일본에서 가장 사진이 예쁘게 나오는 마을'을 만들며 25년 연속 인구를 늘렸다. 이를 위해 인구동급의 지자체들보다 3배 많은 예산을 쓰지만 매년 세출보다 세입이 많은 흑자 재정을 유지하고 있다. 부채 규모도 116억엔으로 연간 예산보다 적은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인구 8400명의 시골 마을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수준의 복지시설이 빼곡하지만 '레고랜드 사태'와 같이 재정 파탄에 빠질 일은 없다고 히가시카와 군청은 자신했다. 국가 보조금과 지방채 보조 등 정부 지원을 80%까지 확보하는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는 덕분이다.히가시카와가 자랑하는 공립 도서관 센토퓨어2를 짓는데는 총 12억엔이 들었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80%까지 끌어낸 덕분에 히가시카와가 실제로 부담한 액수는 3억엔이었다.
"레고랜드 사태 없다"
예산 3배 써도 탈 안 나는 日 시골마을
'일본의 사진 수도' 홋카이도 히가시카와
대규모 문화시설 짓고도 흑자재정 유지
정부 지원 80%까지 끌어내 재정투입 최소화
나머지 20%도 월단위 투자회수 계획 세워
물론 빚을 3억엔만 내서 12억엔짜리 건물을 지었어도 3억엔은 지방채 만기에 맞춰서 갚아야 한다. 히가시카와처럼 다양한 문화시설을 대규모로 지었다면 쌓인 부채도 만만치 않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히가시카와가 흑자 재정을 유지하는 두번째 비결은 투자회수 계획을 철저히 세우는 것이다.레고랜드 사태와 같이 한국은 지자체장의 성과 욕심이 지자체 재정을 파탄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투자회수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지역의 시장 규모와 재정 형편에 어울리지 않는 시설을 유치한 결과다.히가시카와가 재정 파탄에 빠질 가능성은 없다고 자신하는 건 투자회수 계획 없이는 문화시설을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센터퓨어2의 사례를 보자. 센터퓨어2 건설을 위해 발행한 지방채 가운데 히가시카와가 부담해야 하는 액수는 3억엔이다.
센터퓨어2는 무료 공공도서관이어서 입장료 수입을 기대할 수는 없다. 대신 일본 유일의 공립 일본어학교를 유치해 수익원을 마련했다. 일본어학교의 학생들이 내는 수업료도 재원이 되지만 학생 자체가 지방채의 상환 재원이 된다.이들이 히가시카와에 주민등록을 하면 정부로부터 1인당 연간 22만엔의 지원금을 받는다. 연간 100명의 학생을 모집하는 공립 일본어학교를 통해 매년 2200만엔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목공예품 등 히가시카와의 특산물을 파는 기념품 가게도 수입원이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건축가인 구마 겐고가 설계한 워케이션용 공유오피스 '가구의 집'도 히가시카와는 25%만 부담했다. 25% 부담액에 대한 투자금 회수 계획도 이미 마무리가 됐다. 공유오피스 4동의 임대계약을 모두 마쳤기 때문이다. 매월 임대료를 얼마씩 받아서 언제까지 투자금을 모두 회수한다는 계획이 월간 단위로 마련됐다.홋카이도 정중앙의 시골이지만 뛰어난 접근성은 히가시카와가 관계인구를 늘릴 수 있는 또하나의 경쟁력이다. 하네다공항에서 2시간, 아사히카와 공항에서 10분, 홋카이도 2대 도시 아사히카와역에서 30분이면 히가시카와에 닿을 수 있다. 관계인구가 늘어나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록 히가시카와가 투자금을 회수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히가시카와가 인구가 비슷한 다른 지자체들보다 세 배나 많은 예산을 쓰면서도 흑자를 유지하는데는 군청 공무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히가시카와군청 공무원의 숫자가 특별히 많거나 처우가 더 좋은 건 아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무원의 숫자와 처우를 법령으로 정하고 있다.히가시카와 주민들은 "군청 공무원들은 공무원이라기도 영업직 샐러리맨이다"라고들 말한다. 이 지역 주민들이 주변 지역과 통합하는 대신 독자생존의 길을 선택한 1985년 군수 선거는 공무원들의 일하는 방식도 완전히 바꿔놨다.
다카기 마사히토 히가시카와군 토지개발공사 국장은 "독자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예산을 따서 인구를 늘리고 이를 위한 투자금의 회수 계획을 월 단위로 짜야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홋카이도 히가시카와=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