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늘어나는 무인점포…화재 위험엔 '무방비'
입력
수정
지면A27
소화기 조차 비치 안한 곳 수두룩지난 24일 오후 1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 무인사진관. 거울 앞에 비치된 헤어 고데기 두 개 중 한 개가 200도 온도로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머리를 손질한 손님이 전원을 끄지 않은 것이다. 열이 올라오는 고데기 철판 주변에는 검게 그을린 자국이 선명했다. 이곳을 찾은 한 여고생은 “요즘 나오는 제품들은 다 자동 전원 차단 기능이 있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다.
소방법 적용 예외 '화재 사각지대'
전문가들 "다중이용업소 등록해야"
비대면 문화 확산과 인건비 상승 영향으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노래방, 편의점, 세탁소 등 무인점포 창업이 인기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아직 무인시설에 대한 별도 관리규정을 마련하지 않아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관련 소방법에도 적용받지 않아 관할 소방서의 주기적인 점검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무인점포가 화재·안전사고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황 파악 안 되는 무인시설
27일 한국경제신문이 강남 홍대 혜화 등 서울 주요 상권의 무인점포 50곳을 조사한 결과 25곳이 소화기조차 없는 상태로 운영되고 있다. 홍대입구역 인근에는 22곳 중 13곳이 아예 화재 예방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일부 점포에는 소화기가 있었지만 사용 기한이 지났거나, 차량용 미니 소화기를 가게 구석에 준비해 놓는 정도에 그쳤다.현행 다중이용업소법에 따르면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은 소화기, 온도 감지기 등 화재 예방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무인시설의 경우 현재 다중이용시설로 등록돼 있지 않아 이 같은 규정의 예외 대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근 무인시설이 다양한 업태로 늘어나고 있다”며 “사업자신고를 할 때 무인시설과 유인시설을 따로 구분하고 관리하지 않아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일부 소방서에서는 자체적으로 관할 지역구의 무인시설 현황 파악에 나서고 있다. 최근 급격히 늘어나는 무인시설이 화재 예방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화재 건수도 조금씩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소방청에 따르면 무인시설 화재는 지난 4년간 11건이다. 2019년 3건이던 무인시설 화재는 올해 11월 기준 6건으로 두 배로 늘었다. 소방청 관계자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점포가 무인시설인지 정확히 기재하지 않아 실제 화재 건수는 집계한 통계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다중이용업소 지정 시급”
전문가들은 무인 시설에 대한 화재·안전사고 예방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과거 노래방이나 고시원이 다중이용업소에 등록되지 않아 현장에 출동하기도 바쁜 소방관들이 직접 돌아다니며 현황 관리를 해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며 “무인점포는 화재 취약 대상인 만큼 지자체별 현황 파악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더 늦기 전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등 적극적인 안전지침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무인시설에 소화기를 갖다놓는 식의 수동적 화재 대응책은 실제 상황에서 손님이나 행인이 화재 진압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며 “화재 경보를 소방서에 자동으로 신고해주는 시스템이나 스프링클러 강화가 실질적 대안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원종환/권용훈 기자 won04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