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늦게 시작된 메시의 '라스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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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 패한 아르헨티나, 멕시코 2대0 꺾고 기사회생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C조 2차전 아르헨티나와 멕시코의 경기가 열린 지난 26일 카타르 루사일스타디움. 0-0의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던 후반 18분, 멕시코 진영 오른쪽에서 아르헨티나의 앙헬 디마리아(34·유벤투스)가 공을 잡았다.
메시 "모든 경기를 결승전처럼"
후반 19분 왼발로 터트린 결승골
통산 8골…마라도나와 나란히
'영건' 페르난데스 쐐기골도 도와
최초로 5개 대회 연속 어시스트
폴란드에 막힌 '사우디 돌풍'
아르헨 잡은 사우디, 0대2 완패
혼전 양상 C조…2위 경쟁 치열
아르헨-폴란드, 사우디-멕시코
16강 진출국은 내달 1일 판가름
아르헨티나는 1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일격을 당하며 조별리그 탈락 위기에 몰린 상황. 승리를 위한 ‘한 방’이 필요한 그 순간, 디마리아가 공을 넘긴 선수는 리오넬 메시(35·파리 생제르맹)였다. 패스를 받은 메시는 멕시코의 빽빽한 수비를 뚫고 왼발 땅볼 슛을 날렸고, 공은 멕시코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37·클럽 아메리카)가 손을 써볼 틈도 없이 골망 오른쪽에 꽂혔다.‘축구의 신’ 메시가 돌아왔다. 이날 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메시의 선제골에 ‘영건’ 엔소 페르난데스(21·벤피카)의 추가 골을 더해 멕시코를 2-0으로 눌렀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월드컵 은퇴를 선언한 메시의 ‘라스트댄스’에 힘입어 아르헨티나는 16강 진출의 불씨를 살렸다.
이 대회 전까지 아르헨티나는 최악의 상황에 몰려있었다.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약체로 평가받던 사우디아라비아에 일격을 당하면서 ‘이변의 제물’이 됐다. 축구팬들의 비난과 조롱은 슈퍼스타 메시에게 집중됐다. 상당수 아르헨티나 축구팬은 충격적인 결과에 집단 우울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배수의 진을 치고 나선 2차전, 축구 강국 간 대결을 보기 위해 8만8966명이 관중석을 채웠다. 28년 만에 가장 많은 관중이 몰린 월드컵 경기였다.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전반 내내 볼 점유율은 아르헨티나가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좀처럼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잡지 못했다.반전은 메시의 ‘황금 왼발’에서 시작됐다. 디마리아의 패스를 받은 메시가 왼발 중장거리 슛으로 막혔던 골맥을 뚫었다. 승리를 확정지은 쐐기골도 메시의 발끝에서 나왔다. 후반 42분, 메시의 패스를 받은 페르난데스가 왼쪽에서 페널티 지역으로 돌파하며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2-0, 아르헨티나의 완승이었다.
이날 경기를 통해 메시는 개인 기록도 새로 썼다. 월드컵 통산 8번째 골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8골)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또 2006년 독일월드컵부터 5개 대회 연속 출전해 모든 대회에서 도움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1966년 기록 집계가 시작된 이후 월드컵 한 경기에서 골과 어시스트를 모두 남긴 역대 최연소, 최고령 기록도 갖게 됐다. 그는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세르비아전에서 18세357일로 이 부문 최연소 기록에 이름을 올렸고, 이날 경기를 통해 35세155일로 최고령 기록도 새로 썼다.올해로 35세, 메시는 이번 대회가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프로 무대에서 수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그가 단 하나 이루지 못한 목표가 월드컵 우승이다. 메시는 경기 후 “오늘 우리에게 또 다른 월드컵이 시작됐다. 이제 한시름 덜고 폴란드를 상대로 또 다른 출발을 할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승리로 아르헨티나는 1승1패, 승점 3으로 16강 불씨를 되살렸다. 아르헨티나를 꺾으며 이변의 주인공이 됐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날 폴란드에 0-2로 완패했다. 조별리그 3차전을 앞두고 C조는 모든 팀이 16강 진출 가능성이 있는 대혼전에 접어든 셈이다. 아르헨티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승점 동률을 이뤘지만, 골 득실차(사우디아라비아 -1)에 앞서 조 2위가 됐다. 폴란드가 승점 4(1승1무)로 선두에 올랐고 멕시코는 1무1패(승점1)로 최하위에 머물렀다.C조는 마지막까지 골득실을 따질 가능성이 커졌다. 다음달 1일 아르헨티나가 폴란드에 지고, 이튿날 사우디아라비아가 멕시코를 잡게 된다면 아르헨티나는 조별리그를 끝으로 짐을 싸야 한다. 메시는 “포기해서도, 실수해서도 안 된다. 앞으로 모든 경기는 결승처럼 치르겠다”고 다짐했다. 한발 늦게 추기 시작한 ‘축구의 신’의 라스트댄스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