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18년 CEO 차석용의 퇴장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의 대작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이를 차용해 생물학의 ‘최소율의 법칙’과 비슷한 의미의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을 제시했다.

행복한 가정이 그러하듯, 성공한 기업도 서로 닮았다. 성공한 기업의 원인일 수도 있고, 또는 결과물일 수도 있는데 그들에겐 장수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 올해 153년 된 골드만삭스(GS)에는 39년간 CEO로 재직한 전설적 경영인이 있다. 1929년 대공황 당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GS를 구했다는 163㎝의 ‘작은 거인’ 시드니 와인버그다.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주급 3달러짜리 ‘잡역부 보조’로 GS에 입사한 그의 첫 일은 고위 임원들이 침 뱉는 그릇인 타구의 광을 내는 일이었다. 타고난 성실성으로 허드렛일에도 최선을 다한 그는 창업자 손자의 눈에 띄어 대학도 졸업하고 한 계단씩 승급되더니 대공황의 위기를 넘긴 공로로 40년 가까운 CEO직을 수행했다.

한국의 대표 기업 삼성전자에도 장수 CEO들이 면면히 대를 이어 왔다. ‘기술 삼성’의 초석을 닦은 윤종용 전 부회장이 12년, 뒤를 이은 이윤우 전 부회장이 15년, 권오현 전 회장이 14년씩 사령탑 역할을 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고문이 얼마 전 18년의 CEO직을 마감했다. 재직 기간에 매출을 아홉 배 키우고, 65분기 연속 영업이익 증가 대기록을 세워 ‘차석용 매직’이란 타이틀도 얻었다. 쌍용P&G와 해태제과 시절까지 포함하면 그의 대표이사 경력은 25년에 이른다.12년간 골드만삭스 CEO를 맡다가 2018년 자리에서 물러난 로이드 블랭크페인의 솔직한 말이다. “회사 상황이 어려울 때는 떠날 수 없었고, 상황이 좋아지면 떠나고 싶지 않았다.”

최고경영자에서 내려오는 차 부회장의 속마음이 어떤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수 CEO들이 기업은 물론 우리 사회에 성장 DNA를 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회사 키우느라 수고하셨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