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박세리 "원석 찾아 보석 만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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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적 스포츠 인재들 발굴하고 후원하겠다"
"2004년 지옥 같은 슬럼프…대인기피증 있었다"
박세리(45)는 제2의 인생을 바쁘게 살고 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TV 예능에도 출연하고 새로운 사업도 시작했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잠재적 스포츠 인재들이 공부하고 훈련할 수 있는 스포츠아카데미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지난 2004년 슬럼프 당시에는 대인기피증까지 있을 정도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으나 결국은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국내 프로골프에 입문한 뒤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진출해 25승을 거뒀다. 2007년 LPGA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16년 리우올림픽과 2021년 도쿄올림픽의 한국 여자골프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지금은 '바즈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사회적 기여와 스포츠인 양성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아버지는 겉으로는 강하게 보이는데, 가정적인 분이다.
술은 전혀 못 하신다.
워낙 사람을 좋아해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고, 많이 베풀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과일이나 음료수를 사더라도 박스째로 사들였다.
우리 세 자매가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모두 손이 크다.
어머니는 조용하신 분이다.
뭔가를 나서서 하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이다.
나는 어머니 성격을 닮은 편이다.
-- 초등학교 때는 육상선수였나.
▲ 육상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들어가는지 몰랐다.
어느 날 선생님이 끝자리에 앉아 있는 키 큰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해서 테스트를 했다.
그렇게 해서 육상부원이 됐다.
-- 초등학교 시절 덩치가 컸나.
▲ 유치원 때부터 키가 컸다.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높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교실 끝자리에 앉았다.
-- 육상 실력은 어느 정도였나.
▲ 잘했다.
스카우트를 받아서 중학교에 갔을 정도다.
나는 원래 단거리 선수였는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투포환, 허들 등도 했다.
높이뛰기 외에 거의 모든 종목에 참여한 셈이다.
-- 운동을 잘하는 것은 유전적인가.
▲ 세 자매 중 나만 운동을 좋아했다.
언니와 여동생은 운동을 싫어했다.
성격도 각각 다르다.
-- 초등학교 시절 학업 성적은 어떠했나.
▲ 좋았다.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집중하는 성격이어서 공부도 괜찮게 했다. -- 골프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다.
골프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당시에 나는 골프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골프는 아버지 세대들이나 하는 것이었고, 대전에는 골프를 하는 학생들도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 친구가 나를 골프 대회장에 데려갔다.
일부러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가서 보니 골프는 육상과 달랐다.
푸른 잔디 위에서 하는 것도 그렇고, 경기장 자체도 육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초등부, 중등부 등 선수들을 하나하나 소개할 때 내가 자극을 받았다.
열심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 다른 자극은 없었나.
▲ 아버지가 사업이 잘될 때는 도움을 요청하러 오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일이 잘 안 돼서 급한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됐는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른(도와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 대해)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떤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승용차 안에서 차창을 통해 이를 보게 된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 것을 계기로 나는 성공하고 싶었고, 열심히 운동했다.
-- 골프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갔나.
▲ 당시 골프용품은 얻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지방 곳곳에 다녀야 했는데, 비용이 적지 않게 들었다.
모텔 수준도 안 되는 숙소에서 자기도 했다. -- 수학여행도 안 가고 연습을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 중학교 수학여행에는 참여했다.
고등학교 때는 가지 않았다.
수학여행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학여행 기간에 골프 연습장에 갔다.
-- 평소에 새벽 2시까지 운동했다는 게 사실인가.
▲ 그렇지 않다.
한번은 나를 연습장에 내려주신 아버지가 일을 마치신 뒤 나를 집으로 다시 데려가는 것을 잊으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계속 연습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한 번 있었다는 것이지 내가 매일 새벽 2시까지 연습했던 것은 아니다.
-- 대체로 연습을 많이 했나.
▲ 온종일 연습장에 있었다.
쉬는 것도 연습장에서 해야 마음이 편했다.
-- 골프 연습이 지겹지 않았나.
▲ 물론 재미없었다.
그래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지금 이게 무슨 대회이고 어떤 상황인지 상상하면서 연습하는 것이다.
샷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나만의 연습 방법을 찾은 것이다.
-- 아버지가 혹독하게 훈련시켰나.
▲ 나는 아버지가 시킨다고 하는 성격이 아니다.
공동묘지 훈련도 와전된 것이다.
골프장에서 연습하고 내려오면서 지름길로 가다 보니 옆에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산을 깎아서 골프장을 만들었으니 근처에 묘지가 있었다. -- 취미는 무엇인가.
▲ 취미가 따로 있지 않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아직도 취미를 갖지 못했다.
-- 술은 좋아하나.
▲ 지인들과 밥을 먹으면서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내가 술을 많이 마신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인들과 식당에 가면 술과 음식을 주로 내가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다.
주량은 혼자 먹을 때 기준으로 소주 1병 정도다.
지인들과 함께 마시면 좀 더 늘어난다.
선수 시절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 건강을 위한 운동은 하나.
▲ 평생 운동을 했으니 이제는 좀 나태해지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운동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체중이 15㎏ 정도 늘어났다.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기도 했었는데,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못 했다.
-- 골프도 안 하나.
▲ 은퇴 후 3∼4년은 거의 하지 않았다.
가족, 지인들과 골프장에 가끔 나가는 것 외에는 골프를 거의 안 한다.
-- 지인들과 골프를 할 때도 점수 욕심을 내는가.
▲ 아직도 못 내려놓고 있다.
은퇴 후에는 연습을 안 했으니 필드에서 실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실수가 생기면 스스로 용납이 안 된다.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난다.
골프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다. -- 좌우명이나 삶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 부지런히, 열심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일하고 있고, 기회가 있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항상 감사하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겸손해야 하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 원래 그렇게 타고난 데다 골프라는 직업이 나를 더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골프 경기를 할 때는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
뭔가 결정을 하면 바로 실행하는 성향도 갖고 있는데, 골프 영향이 크다.
-- 대인관계는 어떤가.
▲ 금방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 성격이다.
같은 1977년생 동갑이라고 하더라도 처음 보면 말을 쉽게 놓지 못하고 농담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나는 금방 친해지기보다는 여러 번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친해진다.
내가 좀 까칠해 보이는 이유다.
나는 친하면 친할수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는 언제였나.
▲ 1998년 US 여자 오픈이었다.
잘 알려진 `연못 샷'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연못 위에서 봤을 때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중간 정도로 내려갔을 때는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전하고 싶었다.
연못에 들어가는 순간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도전했고 성공했다.
-- 실패할 가능성이 큰데도 도전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 그런 경험이 있어야 다음에는 고민 없이 바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 본인 삶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나.
▲ 나는 100점 만점에 110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목표로 했던 LPGA '명예의 전당' 입성을 이뤘기 때문이다.
-- 승부 근성이 강한가.
▲ 나는 지기 싫어한다.
작은 것이라도 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 인생에 역경이 있었다면 2004년 슬럼프인가.
▲ 느닷없이 슬럼프가 왔다.
내가 게을러졌거나 운동선수로서 (치열한) 마인드를 잃은 것도 아니었다.
슬럼프가 올 가능성에 대비한 훈련까지 했던 사람이었기에 정신적 혼란이 매우 컸다.
1년 6개월 정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악몽 같았다.
-- 사람도 안 만났나.
▲ 주위에서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는 말이 전혀 괜찮게 들리지 않았다.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도 듣기 싫었고 제발 혼자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대인기피증까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 슬럼프 극복을 위한 노력은 했나.
▲ 반 미친 사람처럼 노력했다.
잠도 덜 자고 더 많이 연습했으며 먹는 것, 자는 것 모든 것을 철저하게 했지만, 점점 나빠졌다.
그때 손가락 부상까지 와서 아예 골프채를 잡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어느 날 지인이 낚시를 권했고, 그걸 하면서 마음이 서서히 정리됐다.
다시 연습하면서 나한테 스스로 이야기하곤 했다.
"어제보다 오늘이 좋아졌고, 내일은 오늘보다 좋아지겠지" 어느 순간 다시 우승하게 됐다.
--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미국인 골퍼 낸시 로페스다.
기록이 좋아서 LPGA '명예의 전당'에도 오른 사람이다.
내가 활동할 때 이분은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아서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팬들이 진심으로 그를 좋아했다.
알고 보니 인간미가 넘치고,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팬들과 소통도 잘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분으로부터 많이 배웠다. -- 일반인들이 골프를 잘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시작할 때 레슨을 잘 받아야 한다.
요즘에는 친구들이 한두 번 가르쳐주면 바로 필드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스크린 골프를 하다가 친구들과 바로 골프장에 가는 사람도 있다.
가장 중요한 기본을 배워야 한다.
골프 에티켓도 함께 배우는 게 좋다.
-- 방송 예능에도 많이 참여하는데, 어떤가.
▲ 내가 방송에서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보니 이런 것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솔직한 것은 격식 차리는 것을 못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송하는 게 재미는 있다.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많이 배우게 된다.
예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은 없다.
나한테는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 본업이 '바즈인터내셔널' 회사 운영인데,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가.
▲ 자선을 통해 소외계층 등에 도움을 준다.
운동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학업과 훈련을 함께하는 스포츠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여건이 안돼서 훈련을 못 받는 선수들이 많다.
돈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선수들을 발굴하고 후원하고 싶다.
쉽게 말해 원석을 찾아서 보석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 사회적 기여를 중시하는데, 그 이유는 뭔가.
▲ 내가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 덕분에 잘 성장했고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이제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 한국 골프가 부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부진하지 않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이 우승을 많이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보면 한국 선수들은 잘하고 있다.
한국인은 정신력이 강하고 적응력이 빠르고 감각이 좋다.
-- 클린턴,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골프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었는데, 왜 거절했는가.
▲ 대회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는 게 솔직히 불가능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대통령 이전 시절에 몇 차례 골프를 했다.
그가 보유한 골프장에서 대회가 열렸을 때다.
-- 다시 태어나도 골프를 하고 싶나.
▲ 남자로 태어나 골프를 하고 싶다.
남자 골퍼로서 한국을 빛냈으면 한다.
-- 정치를 할 생각은 없나.
▲ 전혀 없다.
나는 정치에 대해 모른다.
지금의 삶도 바쁘고, 만족하고 있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후배와 체육인을 도와주는 게 가장 큰 목표다. -- 결혼은 언제 하나.
▲ 결혼 생각이 있지만 어려운 일이다.
나만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을 같이할 분이 어디에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 싶다.
-- 결혼 상대로 어떤 사람이 좋은가.
▲ 친구 같은 사람이다.
키는 나보다 커야 하고,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
-- 본인이 이미 부자인데, 배우자도 안정된 직업이 필요한가.
▲ 나보다는 본인을 위해 필요해 보인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 코로나 때문에 힘이 드는 상황이다.
이럴수록 건강이 최고다.
건강관리 잘하시기를 바란다.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는 다시 행복한 날이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연합뉴스
"2004년 지옥 같은 슬럼프…대인기피증 있었다"
박세리(45)는 제2의 인생을 바쁘게 살고 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TV 예능에도 출연하고 새로운 사업도 시작했다.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잠재적 스포츠 인재들이 공부하고 훈련할 수 있는 스포츠아카데미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지난 2004년 슬럼프 당시에는 대인기피증까지 있을 정도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으나 결국은 극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1996년 국내 프로골프에 입문한 뒤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진출해 25승을 거뒀다. 2007년 LPGA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16년 리우올림픽과 2021년 도쿄올림픽의 한국 여자골프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지금은 '바즈인터내셔널'이라는 회사를 만들어 사회적 기여와 스포츠인 양성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 아버지는 겉으로는 강하게 보이는데, 가정적인 분이다.
술은 전혀 못 하신다.
워낙 사람을 좋아해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고, 많이 베풀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과일이나 음료수를 사더라도 박스째로 사들였다.
우리 세 자매가 이런 모습을 보고 자라서 모두 손이 크다.
어머니는 조용하신 분이다.
뭔가를 나서서 하지 않고 뒤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이다.
나는 어머니 성격을 닮은 편이다.
-- 초등학교 때는 육상선수였나.
▲ 육상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떻게 들어가는지 몰랐다.
어느 날 선생님이 끝자리에 앉아 있는 키 큰 아이들을 운동장으로 나오라고 해서 테스트를 했다.
그렇게 해서 육상부원이 됐다.
-- 초등학교 시절 덩치가 컸나.
▲ 유치원 때부터 키가 컸다.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높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교실 끝자리에 앉았다.
-- 육상 실력은 어느 정도였나.
▲ 잘했다.
스카우트를 받아서 중학교에 갔을 정도다.
나는 원래 단거리 선수였는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투포환, 허들 등도 했다.
높이뛰기 외에 거의 모든 종목에 참여한 셈이다.
-- 운동을 잘하는 것은 유전적인가.
▲ 세 자매 중 나만 운동을 좋아했다.
언니와 여동생은 운동을 싫어했다.
성격도 각각 다르다.
-- 초등학교 시절 학업 성적은 어떠했나.
▲ 좋았다.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집중하는 성격이어서 공부도 괜찮게 했다. -- 골프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다.
골프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당시에 나는 골프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골프는 아버지 세대들이나 하는 것이었고, 대전에는 골프를 하는 학생들도 거의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 친구가 나를 골프 대회장에 데려갔다.
일부러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가서 보니 골프는 육상과 달랐다.
푸른 잔디 위에서 하는 것도 그렇고, 경기장 자체도 육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특히 초등부, 중등부 등 선수들을 하나하나 소개할 때 내가 자극을 받았다.
열심히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 다른 자극은 없었나.
▲ 아버지가 사업이 잘될 때는 도움을 요청하러 오는 분들이 많았다.
그러다 아버지가 일이 잘 안 돼서 급한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이 됐는데,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다른(도와주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에 대해)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떤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승용차 안에서 차창을 통해 이를 보게 된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런 것을 계기로 나는 성공하고 싶었고, 열심히 운동했다.
-- 골프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갔나.
▲ 당시 골프용품은 얻어서 사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지방 곳곳에 다녀야 했는데, 비용이 적지 않게 들었다.
모텔 수준도 안 되는 숙소에서 자기도 했다. -- 수학여행도 안 가고 연습을 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 중학교 수학여행에는 참여했다.
고등학교 때는 가지 않았다.
수학여행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학여행 기간에 골프 연습장에 갔다.
-- 평소에 새벽 2시까지 운동했다는 게 사실인가.
▲ 그렇지 않다.
한번은 나를 연습장에 내려주신 아버지가 일을 마치신 뒤 나를 집으로 다시 데려가는 것을 잊으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계속 연습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한 번 있었다는 것이지 내가 매일 새벽 2시까지 연습했던 것은 아니다.
-- 대체로 연습을 많이 했나.
▲ 온종일 연습장에 있었다.
쉬는 것도 연습장에서 해야 마음이 편했다.
-- 골프 연습이 지겹지 않았나.
▲ 물론 재미없었다.
그래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지금 이게 무슨 대회이고 어떤 상황인지 상상하면서 연습하는 것이다.
샷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다.
나만의 연습 방법을 찾은 것이다.
-- 아버지가 혹독하게 훈련시켰나.
▲ 나는 아버지가 시킨다고 하는 성격이 아니다.
공동묘지 훈련도 와전된 것이다.
골프장에서 연습하고 내려오면서 지름길로 가다 보니 옆에 공동묘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산을 깎아서 골프장을 만들었으니 근처에 묘지가 있었다. -- 취미는 무엇인가.
▲ 취미가 따로 있지 않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아직도 취미를 갖지 못했다.
-- 술은 좋아하나.
▲ 지인들과 밥을 먹으면서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내가 술을 많이 마신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인들과 식당에 가면 술과 음식을 주로 내가 주문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다.
주량은 혼자 먹을 때 기준으로 소주 1병 정도다.
지인들과 함께 마시면 좀 더 늘어난다.
선수 시절에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 건강을 위한 운동은 하나.
▲ 평생 운동을 했으니 이제는 좀 나태해지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운동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체중이 15㎏ 정도 늘어났다.
PT(퍼스널 트레이닝)를 받기도 했었는데, 바쁜 스케줄 때문에 제대로 못 했다.
-- 골프도 안 하나.
▲ 은퇴 후 3∼4년은 거의 하지 않았다.
가족, 지인들과 골프장에 가끔 나가는 것 외에는 골프를 거의 안 한다.
-- 지인들과 골프를 할 때도 점수 욕심을 내는가.
▲ 아직도 못 내려놓고 있다.
은퇴 후에는 연습을 안 했으니 필드에서 실수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실수가 생기면 스스로 용납이 안 된다.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이 난다.
골프를 멀리하게 되는 이유다. -- 좌우명이나 삶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
▲ 부지런히, 열심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일하고 있고, 기회가 있고,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항상 감사하다.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겸손해야 하고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은 어떻게 생긴 것인가.
▲ 원래 그렇게 타고난 데다 골프라는 직업이 나를 더 그렇게 만든 것 같다.
골프 경기를 할 때는 빠른 결정이 필요하다.
아닌 것은 아닌 것으로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
뭔가 결정을 하면 바로 실행하는 성향도 갖고 있는데, 골프 영향이 크다.
-- 대인관계는 어떤가.
▲ 금방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 성격이다.
같은 1977년생 동갑이라고 하더라도 처음 보면 말을 쉽게 놓지 못하고 농담을 주고받지도 않는다.
나는 금방 친해지기보다는 여러 번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천천히 친해진다.
내가 좀 까칠해 보이는 이유다.
나는 친하면 친할수록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 인생에서 하이라이트는 언제였나.
▲ 1998년 US 여자 오픈이었다.
잘 알려진 `연못 샷'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연못 위에서 봤을 때는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중간 정도로 내려갔을 때는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도전하고 싶었다.
연못에 들어가는 순간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도전했고 성공했다.
-- 실패할 가능성이 큰데도 도전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 그런 경험이 있어야 다음에는 고민 없이 바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 본인 삶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나.
▲ 나는 100점 만점에 110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목표로 했던 LPGA '명예의 전당' 입성을 이뤘기 때문이다.
-- 승부 근성이 강한가.
▲ 나는 지기 싫어한다.
작은 것이라도 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 인생에 역경이 있었다면 2004년 슬럼프인가.
▲ 느닷없이 슬럼프가 왔다.
내가 게을러졌거나 운동선수로서 (치열한) 마인드를 잃은 것도 아니었다.
슬럼프가 올 가능성에 대비한 훈련까지 했던 사람이었기에 정신적 혼란이 매우 컸다.
1년 6개월 정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악몽 같았다.
-- 사람도 안 만났나.
▲ 주위에서 "괜찮아, 괜찮아"라고 하는 말이 전혀 괜찮게 들리지 않았다.
누가 옆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도 듣기 싫었고 제발 혼자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대인기피증까지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 슬럼프 극복을 위한 노력은 했나.
▲ 반 미친 사람처럼 노력했다.
잠도 덜 자고 더 많이 연습했으며 먹는 것, 자는 것 모든 것을 철저하게 했지만, 점점 나빠졌다.
그때 손가락 부상까지 와서 아예 골프채를 잡지 못하는 지경이 됐다.
어느 날 지인이 낚시를 권했고, 그걸 하면서 마음이 서서히 정리됐다.
다시 연습하면서 나한테 스스로 이야기하곤 했다.
"어제보다 오늘이 좋아졌고, 내일은 오늘보다 좋아지겠지" 어느 순간 다시 우승하게 됐다.
--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 미국인 골퍼 낸시 로페스다.
기록이 좋아서 LPGA '명예의 전당'에도 오른 사람이다.
내가 활동할 때 이분은 나이가 상대적으로 많아서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팬들이 진심으로 그를 좋아했다.
알고 보니 인간미가 넘치고, 좋은 일도 많이 하시고, 팬들과 소통도 잘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분으로부터 많이 배웠다. -- 일반인들이 골프를 잘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시작할 때 레슨을 잘 받아야 한다.
요즘에는 친구들이 한두 번 가르쳐주면 바로 필드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스크린 골프를 하다가 친구들과 바로 골프장에 가는 사람도 있다.
가장 중요한 기본을 배워야 한다.
골프 에티켓도 함께 배우는 게 좋다.
-- 방송 예능에도 많이 참여하는데, 어떤가.
▲ 내가 방송에서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보니 이런 것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솔직한 것은 격식 차리는 것을 못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송하는 게 재미는 있다.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많이 배우게 된다.
예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은 없다.
나한테는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 본업이 '바즈인터내셔널' 회사 운영인데,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가.
▲ 자선을 통해 소외계층 등에 도움을 준다.
운동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학업과 훈련을 함께하는 스포츠아카데미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여건이 안돼서 훈련을 못 받는 선수들이 많다.
돈이 없어서 운동을 못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선수들을 발굴하고 후원하고 싶다.
쉽게 말해 원석을 찾아서 보석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 사회적 기여를 중시하는데, 그 이유는 뭔가.
▲ 내가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 덕분에 잘 성장했고 좋은 에너지를 받았다.
이제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 한국 골프가 부진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부진하지 않다.
그동안 한국 선수들이 우승을 많이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보면 한국 선수들은 잘하고 있다.
한국인은 정신력이 강하고 적응력이 빠르고 감각이 좋다.
-- 클린턴,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골프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었는데, 왜 거절했는가.
▲ 대회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는 게 솔직히 불가능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대통령 이전 시절에 몇 차례 골프를 했다.
그가 보유한 골프장에서 대회가 열렸을 때다.
-- 다시 태어나도 골프를 하고 싶나.
▲ 남자로 태어나 골프를 하고 싶다.
남자 골퍼로서 한국을 빛냈으면 한다.
-- 정치를 할 생각은 없나.
▲ 전혀 없다.
나는 정치에 대해 모른다.
지금의 삶도 바쁘고, 만족하고 있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서 후배와 체육인을 도와주는 게 가장 큰 목표다. -- 결혼은 언제 하나.
▲ 결혼 생각이 있지만 어려운 일이다.
나만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을 같이할 분이 어디에 숨어 있는 것 같은데,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 싶다.
-- 결혼 상대로 어떤 사람이 좋은가.
▲ 친구 같은 사람이다.
키는 나보다 커야 하고,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
-- 본인이 이미 부자인데, 배우자도 안정된 직업이 필요한가.
▲ 나보다는 본인을 위해 필요해 보인다.
--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 코로나 때문에 힘이 드는 상황이다.
이럴수록 건강이 최고다.
건강관리 잘하시기를 바란다.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새해는 다시 행복한 날이 돌아올 것으로 믿는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취재지원 정한솔 인턴기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