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우크라전·에너지난 속 '국제왕따' 벗어나나

이코노미스트誌 "환경은 유리…단기간 내 국제사회 복귀는 난망"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 에너지 위기 속에 주요 산유국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변화 조짐이 보이면서 베네수엘라가 오랜 '국제왕따'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2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부 제재를 해제하는 등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를 재고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2018년 대선에서 연임에 성공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야권지도자 후안 과이도 측이 대립하는 국내 정치 상황에는 큰 변화가 없으나, 마두로 정권을 둘러싼 국제 환경은 변화 조짐이 뚜렷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마두로 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정권 내 인사 140여 명과 석유, 은행, 광업 등에 제재 조치를 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달리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재개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베네수엘라에 수감된 미국인 7명과 마두로 대통령 부인 실리아 플로레스의 조카 2명을 교환했고, 지난 26일에는 정유회사 셰브런에 베네수엘라에서 천연자원 채굴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 일반 라이선스를 발급했다.

셰브런에 대한 라이선스 발급은 미국 정부가 제재 완화 조건으로 내건 마두로 정권과 야권의 협상 재개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마두로 정권과 야권 협상팀이 이날 멕시코시티에서 만나 베네수엘라 국민을 위한 인도주의 지원안에 합의하고 2024년 대선과 관련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집트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서도 마두로 대통령과 서방 지도자 간에 뜻밖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회의장에서 마주친 마두로 대통령과 2분도 안 되는 짧은 대화를 나누며 그를 '대통령'으로 칭했고, 마두로 대통령은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와도 짧은 만남을 가졌다.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가 마두로를 합법적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미국이 그를 체포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천500만 달러의 보상금을 내건 점을 고려하면 이는 마두로에게 작은 승리라고 평가했다. 좌파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주변 국제상황도 마두로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룰라 당선인은 내년 1월 취임하면 바로 베네수엘라와의 외교관계 회복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콜롬비아의 첫 좌파 정부를 이끄는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지난 1일 외국 정상으로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카라카스 대통령궁을 방문하는 등 이미 양국 관계 복원에 나섰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석유산업 현황과 정치 상황 등을 고려하면 베네수엘라의 국제사회 복귀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고 전망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석유 매장량의 20%를 차지하고 1998년 하루 34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었지만, 차베스 정권과 마두로 정권을 거치는 동안 투자 부진과 부정부패 등으로 석유산업이 망가져 현재 하루 생산량은 65만 배럴에 그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영 정유사 PDVSA의 호세 토로 하디 전 이사는 20년 전 생산량을 회복하려면 앞으로 8년간 매년 250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 같은 투자 유치는 마두로 정부의 과거 정책을 볼 때 불가능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또 마두로 대통령이 야권과의 협상에 진심으로 임하지 않고 연기를 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제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이 되고 있는 마두로 정권과 야권의 협상 전망도 밝지 않다며 전망했다. 바이든 정부가 베네수엘라를 민주주의로 되돌리는 조치가 취해진다면 더 많은 '제재 완화'도 가능하다 제안하고 있지만 마두로 대통령이 실제로 자신이 패배할 가능성이 있을 만큼 깨끗한 선거에는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