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오르던 '예금 금리'…은근 슬쩍 내려간 이유 [빈난새의 한입금융]

정부 "금리인상 경쟁 마라"
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에 정기예금 특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자고 나면 오르던 은행 예금 금리가 주춤하고 있습니다. 이달 중순만 해도 연 5%를 넘어섰던 시중은행 예금 금리는 일주일 전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도 오히려 다시 내려가는 추세입니다. 한동안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때마다 빠르면 당일부터 바로 예금 금리 인상을 선언하던 것과는 확 달라진 모습입니다.

분위기를 바꿔놓은 것은 정부입니다. 금융당국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지난 24일 전후로 하루가 멀다 하고 '금리 인상 경쟁을 자제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은행들의 치열한 수신금리 인상 경쟁이 마냥 바람직한 게 아니라 과도하고 위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대출금리에 비해 수신금리 인상 속도가 더디다며 예대금리차 공시까지 시작했던 정부 스스로의 입장과도 온도차가 큽니다.

금융당국, 연일 금리 인상 자제령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확보 경쟁이 금융시장 안정에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업권간·업권내 과당 경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금융사의 유동성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서 수신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자금 쏠림이 최소화되도록 관리 및 감독을 강화해 달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지난 24~25일 김 위원장과 이 원장이 연달아 내놓은 메세지입니다. '금융권'이라고 통틀어 칭했지만 핵심 타깃(?)은 은행권입니다. 은행들이 수신 금리를 경쟁적으로 올리면서 은행으로의 자금 쏠림이 벌어지고 있으니 자중하라는 경고입니다. 은행 쏠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10월 세 달 간 은행 정기예금으로 흡수된 시중 자금은 모두 109조9000억원에 달합니다. 반면 같은 기간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등 제2금융권 수신은 찔끔 늘어나는 데 그치거나 소폭 줄었습니다.
9월 말 10월 초에는 환율 급등, 금리 발작,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채권시장 불안 등을 줄줄이 겪은 은행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저축은행보다도 예금 금리를 높게 인상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금리 하나 보고 제2금융권에 돈을 넣어뒀던 예금자들이 대거 은행으로 옮겨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은행이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겁니다.

결국 금융당국이 나섰습니다. 금융위는 지난달 말 코로나 사태로 완화했던 은행권 유동성 비율(LCR) 규제 정상화를 미루기로 한 데 이어 28일에는 은행 예대율 규제도 추가 완화해주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규제 비율을 맞추기 위해 자금을 쌓아놓을 필요는 없도록 허들을 낮춰줄 테니 유동성 확보 경쟁을 자제하라는 뜻입니다. 구두 개입도 이어졌습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23~28일간 매일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을 자제하라"며 시장 내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조치하겠다는 엄포도 놓았습니다.

실제로 시중은행 예금 금리는 기준금리와 반대로 하향세입니다. 지난 13일 연 5.18%(1년 만기)까지 올랐던 우리은행의 '우리 WON플러스 예금'은 연 4.98%로 내렸고, 국민은행의 'KB 스타 정기예금'도 연 5%에서 현재 연 4.7%로 떨어졌습니다.

모처럼 고금리 예금을 기다렸던 예금자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권대영 금융위 상임위원은 28일 "원칙적으로 금리 경쟁은 시장에 맡기는 게 맞다"면서도 "시장금리 발작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에 자금 확보를 위한 과당 경쟁이 없었으면 한다고 도덕적 권고를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복현 원장도 같은 날 "(은행 예금 금리 인상 자제 권고가) 예대금리차 축소 목표와 충돌되는 측면이 있지만, 지금은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수신금리에 급격한 움직임이 있게 되면 대출금리 상승으로 연결되는 등 돌고 도는 구조"라고 했습니다. 이어 "시장 기능에 존중이 없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금융시장 특성상 쏠림이 생길 경우 금융당국이 일부 비난을 받더라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길래?

은행의 예금 금리 '급속 인상'은 비은행의 유동성 부족을 부추기고 금융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2금융권에서 돈이 지나치게 많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은행 예금 금리가 단위농협이나 신협, 새마을금고 같은 상호금융기관과 저축은행 예금 금리와 큰 차이가 나지 않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웬만하면 더 안정적인 은행에 돈을 맡기고 싶어합니다. 더욱이 지금은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 은행 선호가 더 두드러지는 때입니다. 은행의 금리 인상 경쟁이 절정에 달했던 10월엔 제2금융권이 이를 따라잡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더 높은 금리의 예적금을 앞다퉈 내좋놓기도 했습니다.
예적금 금리 인상에 고객들이 줄을 서서 가입하고 있다. 허문찬 기자
은행으로의 자금 쏠림이 벌어지자 보험사마저 고금리 저축성보험을 내놓으며 자금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채권 시장이라면 자본성증권 등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면 되지만, 급격한 금리 상승과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시장이 경색된 지금은 채권시장의 '빅 플레이어'인 보험사들도 직접 조달이 쉽지만은 않은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예금 금리 인상이 결국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게 걱정입니다. 예금 금리 인상은 은행들의 자금조달비용지수(COFIX·코픽스) 상승을 매개로 고스란히 대출 금리 ‘도미노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은행이 대출을 위한 자금을 모으는 데 드는 비용, 즉 예금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금리도 높아지는 원리입니다.

변동금리 대출이 70% 이상인 은행 대출 특성상 대출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 새로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물론, 이미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 부담이 빠르게 불어나게 됩니다. 대출을 갚지 못하고 채무 불이행에 빠지는 사람들도 점점 생겨날 위험이 있습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펴낸 보고서에서 "현재 추세대로면 은행 잔액 기준 평균 대출 금리는 내년 상반기 중 5%대에 근접해 2년 내에 이자 부담이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기준 국내 은행의 잔액 기준 가계대출 평균 금리는 전달보다 0.2%포인트 오른 연 4.18%로 이미 4%를 훌쩍 넘어섰습니다.

서 연구원은 "가계부채 위험이 순수 가계보다는 개인사업자, 가계성 법인이 더 높은 점을 고려해 볼 때 가파른 금리 상승은 향후 전체 부채 위험을 키우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대출자의 이자부담이 2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난다면 가계의 소비 위축을 넘어 부동산 시장, 나아가 은행의 건전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정부가 예금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것을 알면서도 금리 인상 자제를 요구한 것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궁여지책인 셈입니다.

유동성 불안, 누가 키웠나

그런데 전문가들이 '유동성 위험'을 걱정할 만큼 국내 소비자와 금융사들이 금리 변동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정부가 그동안 펼쳐온 정책의 탓도 있습니다. 모든 금융사에서 언제 어디서든 클릭 한 번으로 이체가 가능하게 한 오픈뱅킹, 은행 예대금리차 공시 등은 자금 이동 문턱을 없애고 금리 경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들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급진적인 정책들이기도 했습니다.

소비자 편의를 높이고 금융사를 더 치열하게 경쟁시키기 위한 취지였지만, 이로 인해 금융사의 기본 책무인 유동성 관리가 상당히 어려워진 것은 사실입니다. 돈을 구하기 쉬운 저금리 상황에선 문제가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상황에선 금융 불안과 유동성 위험을 키우는 요인이 된 겁니다.
실제 금리 변동에 따라 금융사들의 유동성이 심하게 출렁이는 것은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기준금리가 더 빠르게 더 많이 오른 미국만 봐도 정부가 나서서 금리 인상을 자제시켜야 할 만큼 유동성이 위험 수준으로 들썩이는 상황은 아닙니다.

정치권에서 촉발한 레고랜드 사태로 국내 채권시장 경색이 더 심해졌다는 점도 지금의 금융 불안을 초래한 주요 원인입니다. 은행들이 예금을 통한 조달에 더 열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정부가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채 발행을 자제시킨 것도 큰 몫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금융사의 유동성 불안을 부추길 수 있는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 연구원은 최근 펴낸 '은행간 예금금리 경쟁 과열을 막을 수 있을까'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금융당국이) 은행의 과도한 예금금리 경쟁 자제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대환대출 플랫폼 출시 등 금융회사 경쟁을 유도해 대출금리를 낮추려는 정책 또한 준비하고 있다"며 "정부 규제로 충분한 예금 확보도 어려워진다면 은행의 자금 중개 능력마저 크게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금융 안정을 위한 정책 기조 자체의 전환이 없으면 은행의 금리 경쟁을 막을 수만은 없다는 취지로 풀이되는 대목입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