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FIFA는 월드컵 경기서 욱일기 응원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코스타리카전서 안전요원이 욱일기 제지…FIFA, '욱일기 금지' 공식화한적 없어
국내 축구계선 "우리가 항의 안했는데도 조치"…'FIFA 차원 욱일기 금지'로 해석
일본선 "축구에 '뒤틀린 민족주의' 침윤"…욱일기 응원, 일본 우경화 산물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 일본과 코스타리카 경기가 열린 지난달 27일 알라이얀의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욱일기'(旭日旗)를 내걸고 응원하는 일본 관중을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제지했다는 보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현장에 있었던 한국 취재진에 따르면 당일 경기장을 찾은 대다수 일본 관중은 일장기를 흔들었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욱일기도 더러 목격됐다.

일부 일본 관중이 관중석 벽과 난간에 욱일기를 걸어두려다 FIFA 안전요원들에게 제지당하는 모습이 여러 곳에서 포착됐다.

안전요원이 월드컵 경기장에서 욱일기를 사용한 응원을 적극적으로 제지하고 나선 건 처음이어서 국내 축구계 안팎에선 욱일기에 대한 국제 스포츠계의 부정적인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실제로 FIFA는 월드컵 경기장 내에서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일까?
축구는 선동적인 스포츠로 통한다.

수십만, 수백만의 관중을 쉽게 끌어모아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하는 만큼 강한 대결 의식으로 다른 팀에 대한 배타성과 공격성을 조장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축구 경기가 민족주의나 정치색으로 채색돼 경기장 안팎에서 충돌을 빚는 사례를 적지 않게 찾아 수 있는데, 이번 카타르 월드컵도 예외가 아니다.

월드컵 F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모로코가 벨기에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자 흥분한 모로코 축구 팬들이 벨기에 수도 브뤼셀 중심가에서 난동을 부리다 진압되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축구 선수나 팬들이 유독 한일전의 승패에 집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욱일기는 과거에도 일본팀의 축구 경기에 등장한 적이 있지만, 일본 관중의 욱일기 응원이 잦아지면서 논란이 본격화한 건 10년 전부터다.

언론 보도를 보면 2012년 8월 FIFA 20세 이하(U-20) 여자 월드컵에 참가한 양국 대표팀은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 8강전에서 맞붙었는데 관중석에 욱일기가 등장했다.

일본축구협회는 당초 축구 경기에 정치·종교적 메시지를 결부시키는 걸 금지한 FIFA 규정을 적용해 관중의 욱일기 소지를 금지했다가 돌연 금지 방침을 철회해 논란을 낳았다.

이듬해 7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한국 대 일본 경기에서 일본 관중 일부가 경기 시작 직전 대형 욱일기를 꺼내 흔들다 수 분 만에 대회 진행요원들에게 제지당했다.

이에 한국 응원단은 이순신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대형 사진을 잠시 펼쳐 보이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적은 대형 현수막을 내걸며 맞대응하기도 했다.
양국 축구 응원전이 노골적인 대결 양상으로 치닫게 된 데는 정치·사회적 배경이 있다.

일본 스포츠 저널리스트인 세이 요시아키는 저서 '축구와 내셔널리즘'(2016년·국내선 2018년 번역본 발간)에서 일본 프로축구인 J리그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에 접어들던 1993년 출범해 일본인들의 박탈감을 위로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일본 축구에 '뒤틀린 민족주의'가 스며들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다 한국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쓴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일본 내 혐한(嫌韓) 조류를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봤다.

이후 장기 불황에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까지 겹치면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심화되고 극우 강경론이 득세하면서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목소리가 노골화됐다.

그러자 앞서 한일 교류에 힘을 쏟던 이명박 대통령이 2012년 8월 우리나라 국가원수로는 처음 독도를 방문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랭했다.

또 이 무렵을 전후해 런던올림픽 한국 축구대표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를 비롯해 기성용(2011년), 구자철(2012년) 등 한일전 축구경기에서 반일 메시지를 담은 한국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가 잇따랐다.

이처럼 축구 경기에서의 욱일기 논란은 일본 사회와 젊은 층의 우경화 흐름과 맞물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태양에서 햇살이 뻗어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욱일기는 일본이 근대 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1867년) 직후 육군 연대기(1870년)와 해군 군함기(1889년)로 사용됐다.

이후 일본이 제국주의 침략 전쟁에 몰두하면서 욱일기는 군국주의의 깃발이 됐고, 패망한 뒤에도 육상자위대기와 해상자위대의 자위함기로 살아남았다.

일본 정부는 방사형의 욱일기 무늬가 일본의 전통 문양으로, 일상생활에서 풍어(물고기가 많이 잡힘), 출산, 명절 축하 등의 의미로 쓰인다는 점을 들어 정치적 해석에 반대한다.

하지만 일본 침략의 피해를 입은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욱일기를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 같은 '전범기'로 받아들인다.

일각에선 노예제와 인종 차별의 상징이 된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의 깃발과 비교하기도 한다.
축구 경기에서의 욱일기 응원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논란이 된 적은 많지만, FIFA 차원에서 정식으로 문제 삼아 제재한 사례는 지금까지 한 차례뿐인 것으로 파악된다.

FIFA의 아시아·태평양 지부인 아시아축구연맹(AFC)은 2017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붙은 K리그 수원 삼성과 J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의 경기에서 일본 관중이 욱일기를 내건 데 대한 책임을 일본 팀에 물어 1만5천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AFC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당시 발표 자료를 보면 일본 서포터(팬)가 '민족적 출신과 정치적 견해에 관련된 차별적인 상징'을 사용한 표현물을 내건 사실을 언급하며 AFC 징계윤리강령 58조와 65조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AFC 징계윤리규정 58조는 선수나 관중이 인종, 피부색, 성별, 장애, 언어, 나이, 외모, 종교, 정치적 견해, 빈부, 출생, 신분, 성적 지향, 민족, 국적, 사회적 출신과 관련된 멸시나 차별, 모욕적인 말이나 행동으로 개인이나 단체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경우 벌금이나 출장정지, 경기장 출입금지 등의 징계를 하도록 규정한다.

65조는 관중이 저지른 폭력이나 모욕적, 종교적, 정치적 메시지와 이미지 사용 등 부적절한 행위도 해당 팀이 책임지도록 했다.

FIFA를 구성하는 6개 대륙별 축구연맹 중 하나인 AFC는 '모든 차별에 대한 반대'와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원칙으로 삼는 FIFA의 정신과 규정을 따르기 때문에 이 징계는 사실상 FIFA가 욱일기 사용을 금지한 것으로 해석된다.

2019년 개정된 FIFA 징계규정 13조는 AFC의 차별금지 규정과 세부 벌칙만 다를 뿐 취지는 거의 동일하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 영문판도 'FIFA가 욱일기를 금지했다'고 설명하면서 AFC의 제재 사례를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와 대한축구협회도 FIFA 차원에서 욱일기를 금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보낸 서신에서 도쿄올림픽에서 욱일기 사용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FIFA도 이미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체부와 대한축구협회 등에 확인한 결과 FIFA가 직접 욱일기 응원과 관련해 징계를 내리거나 금지한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한 적은 아직 없다.

FIFA는 지난달 27일 일본과 코스타리카 경기에서 일본 관중의 욱일기 응원을 제지한 데 대해서도 따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연합뉴스가 지난달 29일 이메일로 FIFA에 욱일기에 대한 입장과 결정 사항에 대해 질의한 데 대해서도 답변을 하지 않았다.

수년간 전 세계를 무대로 욱일기의 문제점을 알리는 데 주력해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욱일기 문제에 대한 FIFA의 공식 입장이 나온 적은 없고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관련 언급이나 입장 표명은 없다"며 "하지만 월드컵 경기 중 FIFA 측이 먼저 나서 욱일기 응원을 제지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욱일기가 금지 대상이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해석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와 축구협회에서도 욱일기 문제를 지속해서 어필해왔는데 이번(카타르 월드컵)엔 별도 요청을 하지 않았음에도 FIFA가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선제적으로 욱일기 사용을 제지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며 "FIFA의 태도나 입장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IOC는 지난해 도쿄올림픽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의 이순신 장군 현수막 철거를 요청하면서 욱일기 사용 금지 요구에는 "사안별로 대처하겠다"는 유보적인 태도로 사실상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올림픽 헌장 50조는 '올림픽 경기장 안팎에서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도 불허한다'고 규정한다.

반면 FIFA는 각종 차별을 금지하고 정치적 영향을 차단하는 데 IOC보다 훨씬 단호하다.

이는 다른 스포츠보다 정치색에 물들기 쉽고, 뿌리 깊은 인종차별주의와 오랜 싸움을 해온 축구의 속성이나 역사와 관련이 있다.

손흥민, 박지성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한국 선수들조차 유럽 무대에서 인종차별주의의 표적이 된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FIFA의 차별 금지 노력은 갈수록 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선 역대 어느 대회보다 정치, 종교, 문화의 차이로 인한 각종 차별과 갈등, 분쟁을 막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FIFA는 중세 종교전쟁을 상징하는 십자군 복장을 하고 경기장에 들어가려던 잉글랜드 관중을 제지했고, 세르비아 대표팀이 코소보 독립에 반대하는 깃발을 라커룸에 내건 것과 관련해 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유럽 대표팀 주장들이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의 성 소수자 차별에 대한 반대 의미를 담은 무지개색 완장을 차고 경기에 출전하려던 것도 막아 세웠다.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 응원을 제지한 것도 FIFA의 이 같은 움직임과 맞물린 것으로 볼 수 있다.

송기룡 대한축구협회 국장은 "중동, 이슬람권에서 열린 첫 월드컵 대회인 데다 대회에 앞서 중동의 여성·성 소수자 인권 문제가 부각된 탓에 말썽의 소지가 생기지 않도록 FIFA에서 더욱 예민하고 세세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차별을 막고 정치와 거리를 두려는 FIFA의 움직임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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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