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며 모은 탄소 팝니다"…황당 아이디어에 대기업 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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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19
우리가 몰랐던 일상의 모험가들
라이트브라더스 김희수 대표
47세에 사표 던진 '자전거 마니아'
신형 자전거 사려고 했더니 너무 비싸
"자전거도 사고이력 알면 좋을 텐데"
중고 인증 시스템 특허로 입소문
테슬라 기사 보고 신사업 개척
운전자가 모은 탄소배출권 팔아 흑자
글로벌 컨설팅사와 알고리즘 개발
자전거 타면 탄소배출 저감량 저장

‘왜 자전거는 중고차처럼 쉽게 팔 수 없을까. 공식 인증 제도를 만들면 어떨까.’그는 ‘중고 자전거 공식 인증 제도’를 만들었다. 병원에서나 쓰는 X레이를 활용해 자전거 속을 들여다보고 전문가가 61개 항목을 진단하는 프로그램이다. 2017년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서빙고동 한 지하창고에 사무실을 열었다. 주변 사람이나 투자자들은 “자전거 시장도 작은데 그보다 더 작은 중고 인증 사업이 무슨 돈이 되겠냐”며 등을 돌렸다. 하지만 자전거 마니아들은 열광했다. 마침 코로나19 확산으로 실내보다 야외 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1000만원대 초고가 자전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현재 개인 간 거래 비율은 70%에 달하며, 중고 자전거 인증 판매를 통해 이 회사는 올해 매출이 지난해보다 150% 증가한 50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금까지 98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김 대표는 올 2월 자전거 특화 거래 시스템을 인정받아 중고나라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그의 아이디어 페달은 멈추지 않고 있다. 자전거를 탈수록 포인트를 쌓아주는 ‘탄소 계산기’를 선보여 탄소배출권 거래 플랫폼으로 진화 중이다.
“테슬라 기사 보고 사업 대전환”
자전거 중고 인증 플랫폼을 선보인 김 대표는 2021년 1월 우연히 ‘테슬라가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는 신문 뉴스 한 줄을 봤다. 그 기사의 핵심은 테슬라가 전기차를 팔아 이익을 낸 게 아니라는 것. 당시 테슬라는 운전자들이 전기차를 끌면서 모은 탄소배출권을 팔아 이익을 냈다.“테슬라의 아이디어를 자전거에도 접목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전거를 활용해 세상에 없던 친환경 사업 모델이 가능할 거라고 확신했죠.”사업을 실현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자동차는 역사가 길어 다양한 운전 자료가 있었지만 자전거에 대한 데이터는 전무했다. 자전거를 이용하면 탄소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공신력 있는 수치 자료가 필요했다. 그는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에 자전거 탄소배출 거래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글로벌 기업 월마트와 보잉, 스레드업 등을 컨설팅한 미국 시프트어드벤티지와 손잡고 자전거 탄소배출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처음부터 국내를 넘어 글로벌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진출을 노렸다.
야심 차게 ‘탄소 계산기’를 선보였지만, 사람들은 또다시 비웃었다. 투자자들은 “겨우 중고 자전거 거래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갔는데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본업에 더 집중하라”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전거 탈수록 쌓이는 포인트
라이트브라더스 앱을 켜고 자전거를 타면 모든 운행 거리가 저장된다. 글로벌 라이딩 기록 앱인 ‘스트라바’와 연동해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이용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아낀 탄소배출 저감량은 아카이브에 저장된다. 이 수치는 매일매일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된다. 지금까지 나무 약 2만 그루가 흡수할 수 있는 탄소량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탄소배출권을 기업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테슬라의 수익 모델과 달리 그는 이용자들과 수익을 나누기 위해 ‘스윗스웻’ 포인트를 도입했다. 자전거를 탈수록 돈을 버는 M2E(Move to Earn)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10㎞를 타면 500포인트(현재 11월 기준)가 쌓인다. 포인트는 한국거래소(KRX)의 ‘KAU23’ 배출권 가격이 기준이다. 가격이 오를수록 포인트 적립률도 높아진다. 포인트를 통해 앱에서 자전거 관련 용품을 살 수 있다.“환경을 지키자는 거창한 슬로건 없이 이용자에게 눈에 보이는 혜택을 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글로벌 탄소배출권 거래 플랫폼 도약”
방준식 기자 silv00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