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K패션 '큰손'으로 뜨는 일본

일본 유통사, SNS서 물건 보고
"공급 가능하냐" 먼저 연락 와

코로나 사태 후 한류 더 세져
韓 플랫폼·패션회사 대거 진출

동대문 호황 이끈 광저우 상인
발길 뚝 끊겨…"中 장사 올스톱"
사진=신경훈 기자
일본이 동대문표 K패션의 새 ‘엘도라도’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만 해도 최대 수출시장이던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 등으로 꽉 막힌 틈을 타 1020 젊은이들 사이에 한류가 깊숙이 스며든 일본이 대안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동대문에 밀려오는 日 수입상

“중국 상인보다 일본 상인이 더 많다.” 4일 서울 동대문 APM 2층에서 만난 한 애슬레저(스포츠웨어 겸 일상복) 도매상의 얘기다. 그는 “요즘 동대문 상인 중엔 일본 수입상이나 유통사에 줄을 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림이 한둘이 아니다”고 했다.

여기엔 2020년 코로나19 창궐 이후 폭발한 일본 내 K콘텐츠의 인기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태원 클라쓰’ 등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길거리 패션이 인기를 끄니, 동대문표 K패션 제품을 사려는 일본 상인들도 그에 맞춰 불어났다. 이들은 한국에서 들여간 동대문 의류들을 큐텐재팬, 디홀릭, 지그재그 등 한국 의류 특화 온라인 패션몰에서 판매한다.

이베이재팬이 운영하는 큐텐재팬에 따르면 지난 8월 K패션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88% 증가했다. 이는 패션 카테고리 전체 거래액 증가율(72%)에 비해 높은 수치다. 통계청의 온라인 해외 직접 판매액(역직구) 조사 결과 지난해 일본이 2806억원으로 미국(2796억원)을 제치고 2위에 오른 것도 일본 내 K패션의 인기가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직접 진출 나선 플랫폼·브랜드

최근 1~2년 새 직접 일본 공략에 나선 국내 패션 플랫폼과 길거리 브랜드가 부쩍 늘었다. 플랫폼 디홀릭은 2011년 중국과 일본에 진출했다가 2017년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일본에 집중하고 있다. 동대문산 보세 의류를 일본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동대문 브랜드를 기반으로 하는 신상마켓, 지그재그, 에이블리 등 패션 플랫폼은 올해를 기점으로 일본에 온라인몰을 개설하고 상품 판매에 나섰다.널디, 젝시믹스, 디스이즈네버댓 등 동대문 스타일의 길거리 패션 브랜드들도 일본 도쿄 한복판에 대거 플래그십스토어를 열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한국 의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아 일본 내에서 여러 패션 장르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대문 상인 가운데는 일본 소비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통 방식을 플랫폼이나 SNS 중심으로 재편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박중현 동대문상가 회장은 “특색 있는 동대문 브랜드의 SNS 계정을 보고 먼저 제품 공급을 문의하는 일본·동남아시아 유통사가 많다”며 “동대문도 플랫폼 거래액이 80~90%에 달하는 상인이 나올 정도로 확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존재감 잃은 中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동대문 호황을 이끌던 중국 상인들의 존재감은 극도로 위축됐다. 2018~2019년에 동대문 호황을 이끌던 광저우·항저우 상인과 왕훙(인플루언서)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발길을 끊었다. 동대문 패션타운 관계자는 “2018년을 돌이켜보면 중국 큰손들이 매주 캐리어를 끌고 와 의류를 몇백 장씩 싹쓸이하기도 했다”며 “지금 동대문 상인의 대중국 비즈니스는 사실상 올스톱됐다”고 했다.동대문 상인들은 중국 정부가 봉쇄 정책을 완화하더라도 중국 상인들이 다시 찾아오긴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 중국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에르메스 샤넬 등 럭셔리 브랜드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는 소비층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배정철/이미경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