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자력 부품공급 '외국사 의존'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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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3
이금용 세종대 교수·원자력부품 품질평가관리 연구소장충분히 예상한 일이다. 폴란드의 1단계 원자력 사업자 선정에서 대한민국이 고배를 마신 일 말이다. 경쟁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WH)가 한국이 개발한 APR1400 원전을 외국에 수출하려면 자사와 미국 정부의 승인을 얻으라고 소송을 걸어온 것도 원인의 하나였다. 이는 외국사의 당치않은 견제로 볼 수밖에 없다. 이후 폴란드 정부와 우리 정부는 WH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봤기 때문에 폴란드 원전 2단계 건설 관련 협약을 10월 31일 체결했다. 순조롭게 본계약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해외 원전 건설 수주보다 더 급히 해결할 과제가 있다. 국내 가동 원전 기기 및 부품 공급망에서 외국 제작사가 가진 독점적 지위, 그로 인한 폐해를 청산하는 작업이다.원전은 가동 수명이 60~100년이다. 일단 원전을 건설하고 나서는 안정적인 유지 보수와 부품 공급이 경제적·안정적인 원전 가동에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원전 부품 수급의 외자 구매 비율은 매입 금액 기준 30% 전후로 추정된다. 영국에 본사를 둔 C사 제어 밸브 부품의 대(對)한국 매출 총이익(GM)은 75~85%에 이를 정도다. 나머지 대다수의 외국 공급사 또한 이처럼 엄청난 폭리를 지난 50년 가까이 누려왔다. 외국 제작사가 원전 건설 시 최초 공급한 기기의 유지 보수 부품은 국내에서 거의 100% 수의(隨意)계약에 준하는 독점적 공급 계약 절차가 적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술기준 위반, 위변조 품목(CFSI) 및 품질 요건 부적합 사항(NCR) 발생 때의 해결 비협조, 납기 미준수, 뇌물 사건 및 제3국을 통한 우회 납품 등 누적된 폐해가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연간 수백억원의 부품이 해외에 발주되고 있는 것이 지금 한국 원전업계의 현실이다. 매우 어려운 최첨단 기술 제품도 아니고, 국내 기업이 못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저 50년 관행과 외국 제작사의 왜곡된 지위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하루빨리 이 같은 폐해를 청산해야 한다. 이들이 원전 유지 보수 시장의 알짜배기 승리자로서 조용히 웃는 자들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전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을 중심으로 원전 기기 및 부품 국산화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방식이라면 폐해 청산은 요원(遙遠)하다. 해결 방법은 있다. 이해당사자에 흩어져 있는 국산화 및 국내 생산 기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우선 원전 기기 및 부품의 완전한 국산화 기술 자립과 국내 생산을 통합적으로 인증·관리·조정하는 독립적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이 국산화 통합 추진 조직은 원전 운영사인 한수원,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주무 부처인 산업부 그리고 국내 제조기업 등이 참여해 가동 원전 기기 및 유지 보수 부품의 국내 생산과 공급을 위해 필요한 기획과 조정, 관리 및 육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최종 목표는 국내 중소·중견기업이 우리 원자력발전소에 필요한 기기와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원전 제조 능력은 충분하다. 국민의 안전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최소한의 조치,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