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혹독한 실리콘밸리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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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열 실리콘밸리 특파원“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면서 보내고 있습니다. 팀이 사라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최근 만난 구글의 한 엔지니어는 최근 이어지고 있는 실리콘밸리 테크기업의 정리해고 소식에 따른 사내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메타, 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가 차례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어 구글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실리콘밸리에 그 어느 때보다 스산한 겨울이 찾아왔다.
빅테크 정리해고 잇따라
지난달은 정리해고의 연속이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모기업인 메타는 1만1000명에게 해고를 통보했고, 전자상거래 공룡 아마존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부서를 중심으로 1만 명가량 감축할 예정이다. 일론 머스크가 인수한 뒤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소셜미디어 트위터의 정리해고 인원은 5300명에 이른다. 이외 △음식배달업체 도어대시 1250명 △온라인중고차업체 카바나 4000명 △통신장비업체 시스코 4100여 명 △온라인결제업체 스트라이프 1100명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 해고가 이뤄지고 있다. 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 회사에 근무하는 디자이너는 “옆자리 동료가 오전에 이메일로 퇴사를 통보받고 곧바로 짐 싸서 나가는 모습을 봤다”며 “다음엔 내 차례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100명 이상 정리해고한 실리콘밸리 테크기업의 인력 감축 규모만 올 들어 누적 9만1000명으로 추산된다. 작은 테크기업까지 포함하면 13만7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들이 한꺼번에 구직시장에 쏟아져나오면 새로운 직장 구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어려울 것이다. 한 구글 엔지니어는 “공고를 내고 진행 중인 한 기업 채용에 메타 등에서 나온 사람들이 수백 명씩 몰렸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온라인 시장이 급속하게 커지면서 테크기업들은 눈부신 성장을 했다. 활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에 기업들은 시설 투자와 인력 채용을 크게 늘렸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나면서 급격한 확장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제 테크기업들은 인플레이션과 가파른 금리 인상, 제품 판매 부진 등의 악재 속에 인력을 줄이고 있다.이번 겨울은 스타트업 생태계에 더 혹독하다. 나스닥지수는 올 들어 26% 이상 하락했고, 미국 증시 기업공개(IPO) 건수는 지난해보다 80% 이상 줄어들었다. 투자자들은 스타트업 투자에 더욱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스타트업들은 자금 부족으로 고전하고 있다.
살아남는 게 최우선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벤처캐피털(VC)인 세쿼이아의 더글러스 레오네 파트너는 최근 “2000년 닷컴거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며 “테크기업의 기업가치가 2024년까지는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지난 팬데믹 시기에 급락하는 시장을 먼저 겪었던 에어비앤비는 회사 인력의 25%를 줄이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 덕분에 에어비앤비는 여행 수요가 회복된 지난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부활했다. 한 실리콘밸리 VC 대표는 “버티기가 중요한 때”라며 “현재의 위기에서 살아남는 기업이 궁극적으로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