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덕분에 행복"…새벽 한파 녹인 광화문 3만 응원 열기

마지막 광화문광장 거리응원…거센 눈발 속 뜨거운 응원
"중요한 건 4년 뒤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입니다. "
6일 새벽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광화문광장 응원에 나섰던 직장인 안성혁(26)씨는 "최근 들어 좋지 않은 소식이 많았는데 태극전사들이 너무 잘해줘서 분위기가 환기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흩날리는 눈발과 영하 3도의 추위에도 '붉은악마' 머리띠의 불빛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을 가득 수놓았다.

서울시 추산 최대 3만3천 명이 광장에 모여 16강전에 대한 관심을 실감하게 했다. 광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5대 앞에는 경기 시작 6시간 전부터 시민들이 담요와 핫팩, 패딩으로 중무장한 채 둘러앉았다.

경기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축구팬이 예상보다 많이 모여들자 서울시는 광장 옆 세종대로를 막고 응원 구역을 넓혔다.

광장 맨 앞줄에서 한복을 입고 북을 치며 응원했던 이상헌(30)씨는 "졌지만 잘 싸웠고 16강에 진출해 축제를 즐길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 2시간 경기 내내 함성을 질렀는지 이 씨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월드컵 거리응원이 처음이라는 스무 살 박성찬·권성현·강경서씨는 "처음에 선제골이 먹혀 아쉬웠지만 끝까지 좌절하지 않은 태극전사들이 자랑스럽다"며 "16강에 올라온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전반에만 4골을 아쉽게 실점하면서 전반전이 끝난 뒤 "4대 0이다, 집에 가자"며 발걸음을 돌리는 시민도 있었다. 서울시가 마련한 한파 쉼터에는 잠깐이라도 몸을 녹이려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손이 꽁꽁 언 나머지 쉼터에서 휴대전화로 중계를 보는 시민도 있었다.

후반 들어 눈발이 거세졌지만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시민들은 "한 골만!"을 간절히 외쳤고 장갑 낀 두 손을 모았다.

후반 31분 백승호의 만회 골이 터지자 거대한 함성에 이어 "오∼필승 코리아∼!"라고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집에 가려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스크린으로 눈길을 돌렸다.

추가 득점 없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고, 시민들은 일어나 손뼉을 치면서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외치며 멀리서나마 선수들에게 격려를 보냈다.

비록 8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귀갓길 시민들은 아쉬움보다는 대표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는 반응이었다.

이날 출근 시간을 당겨 광장에 나섰다는 오판순(53)씨는 "브라질은 축구로 최강이니까 한국은 배운다는 입장일 것"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16강까지 올라온 것에 만족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젊은 층 사이에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라는 구호가 유행어가 됐을 정도로 대표팀이 보인 투지와 용기는 일상에 지친 시민들을 '응원'했다.

친구들과 광장을 찾은 취업준비생 채은지(24)씨는 "우리 선수들이 16강에 올라온 것만 해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뜻깊은 교훈을 준 것 같다.

덕분에 연말이 즐거웠다"며 대표팀이 감사하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으로 출근하기 전 광장을 찾은 직장인 김은비(25)씨는 "요즘 일상이 무료했는데 축구 보는 맛에 행복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서울시는 출근 시간대와 맞물리는 경기 종료 시각에 광화문역·경복궁역 등 지하철역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해 인파를 관리했다.

눈발과 한파가 겹쳤지만 우려하던 안전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시는 이날 응원전을 위해 안전관리 인력 1천400명 규모를 편성했다.

경찰도 응원 인파에 대비해 이날 0시께부터 광화문 광장에 경찰관 65명, 기동대 6개 부대(380여 명), 특공대 20명을 배치했다.

오전 6시께는 응원단과 출근 인파가 섞여 벌어지는 혼잡을 대비하기 위해 2·3·5호선 열차가 2회씩 증편됐다. 안전을 위해 광화문역 등 지하철역에 배치된 경찰은 시민들에게 "길이 미끄러우니 거리를 두고 천천히 내려가 주시기를 바란다"고 거듭해서 안내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