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손이 부끄럽지 않게 선물을 들고 가라

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전근 발령을 받아 다른 학교로 가게 됐다. 학교서 작별 인사를 끝내고 오자 아버지가 초록색 보자기에 싼 물건을 내주며 선생님께 갖다 드리라 했다. 묵직했다. 몇 걸음 걷다 손을 바꿔가며 들어야 했다. 이삿짐을 다 싼 선생님은 차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자기를 웃으며 건네받은 선생님은 풀어보지는 않았다.

돌아와 잘 전했다고 말씀드리자 “뭐라 하시더냐?”고 되물었다. “아무 말씀도 없고 웃기만 했다”고 하자 아버지는 “내 기분이 이렇게 좋은데 선생님도 틀림없이 좋으실 거다. 선물이란 게 그런 거다. 받는 사람도 즐겁고 준 사람도 기분 좋은 거다”라고 했다. 아버지는 “작별하고 나서 다시 찾아가니 쑥스러웠을 텐데 이럴 땐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가면 훨씬 마음이 편하다. 손이 부끄럽지 않게 작은 선물을 들고 가라. 공자(孔子)가 이미 한 말이다”라고 하셨다.훗날 나이 들어 찾아본 고사성어가 속수지례(束脩之禮)다. ‘묶은 육포의 예절’이라는 말이다. 스승을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선물함으로써 예의를 차린다는 뜻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나온다. 공자가 한 말에서 유래했다. “속수 이상의 예를 행한 자에게 내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바가 없었다[自行束脩之以上 吾未嘗無誨焉].” ‘속수’는 열 조각의 말린 고기다. 육포를 말한다. 예물 가운데 가장 약소한 것이다. 공자는 모든 가르침은 예(禮)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가장 작은 선물인 속수로 예물을 가지고 오게 해 제자의 예를 지키도록 했다.

아버지는 논어의 이 구절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공자는 가르쳐달라고 찾아오는 이의 쑥스러움이나 부끄러움을 지워주려고 예물을 말한 것 같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놀랍다. 공자는 예물도 심지어 지정했다. 구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고 일용품일뿐더러 값이 많이 나가지 않게 했다”라고 공자의 뜻을 해석했다. 이어서 아버지는 “선물도 매한가지다. 받는 이가 부담을 느끼면 뇌물이다”라고 정의했다. 아버지는 “선물(膳物)의 ‘반찬 선(膳)에 쓰인 육달 월(月) 변은 고기 육(肉)’ 자다”라면서 ‘좋은 고기’라는 뜻이라고 일러줬다. 옛날 제사상에 올린 좋은 고기를 나눠 먹는 것에서 유래했다며 이웃과 최상의 친교를 다진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그날 보자기에 싸 전달한 아버지의 선물은 벼루였다. 한참 지나 선생님이 보내온 답례품을 풀어보던 아버지가 먹을 들고 나를 불렀다. “묵향이 참 좋다. 좋은 먹이다”라며 좋아했다. 평소 아버지와 교류하던 선생님이 어느 날 우리 집에 오셨다. 마침 글을 쓰시던 아버지의 벼루를 보고 놀라며 단양(丹陽)의 자줏빛 나는 자석(紫石)벼루를 대번에 알아봤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때 귀한 벼루란 걸 금방 맞추는 선생님의 실력을 익히 알아보고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전근 선물을 마련했다”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가장 좋은 선물은 받는 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원하는 물건이다. 원하는 게 뭘까를 생각하는 것부터 선물은 시작한다. 주는 즐거움도 있다. 주면 내 마음이 편해지고 스스로를 칭찬하게 된다.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고민하고 직접 선택하는 삶이니 값진 것이고 의미 있다”라고 선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누굴 만날 때면 작은 선물을 버릇처럼 꼭 챙긴다. 만나기 전에 상대를 떠올리며 선물을 고르다 보면 이미 만난 것처럼 내가 즐겁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니 정성이 담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마음을 쓰는 법이 용심법(用心法)이다. 배우기는 어렵지 않으나 가르치기는 어렵다. 손주들에게도 꼭 물려주고 싶은 귀한 성품인데 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