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소설로 말한다'…작가소개조차 없는 문학잡지 '긋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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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기후위기·노동 등목차조차 없다. 사진, 삽화는 물론 작가소개 한 줄 찾아볼 수 없다. 120여쪽의 잡지를 채운 건 오로지 '이야기'다.
사회현안 주제로 내세워
年 네 차례 발간되는 소설 계간지
3호부터는 주제별 단편소설 공모
등단 여부 등 자격 제한 없어
당선작에는 원고료 150만원
최근 출판사 이음이 창간한 소설 전문 계간지 <긋닛>은 매년 네 차례(3월, 6월, 9월, 12월) 사회 현안을 주제로 한 소설들을 모아 싣는다. 주제의 이해를 도울 에세이도 한 편씩 담는다. 1호의 주제는 '비대면', 2호는 '기후위기'다. 내년 3월 '노동'을 주제로 나올 3호부터는 등단 여부와 상관 없이 단편소설을 공모해 당선작을 함께 실을 예정이다.<긋닛> 편집위원인 소설가 김태용은 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소설이라는 장르는 시대의 단면, 시대의 문제의식을 일상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데 탁월하다"며 "<긋닛>을 통해 장기적으로 사회가 함께 고민해나갈 하나의 주제를 제시하고, 그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소설을 소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긋닛'은 '단속(斷續)'의 옛말이다. 끊어지고 또 이어진다는 뜻이다. 전력질주하는 세상의 가운데서 잠시 멈춰서서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다음 나아갈 길을 고민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여러 작가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소설을 쓰고 동시에 하나의 문예지를 통해 공개하는 건 이례적이다.기존의 문예지도 매 호마다 시대를 진단하는 주제를 하나씩 정하긴 하지만, 주제와 직접적으로 엮이는 건 대개 평론이다. 문예지에 싣는 소설은 주제와 상관 없이 청탁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긋닛>은 매 호가 한 권의 앤솔로지(특정 주제에 대한 여러 작가의 작품을 묶은 책) 같다.
김 작가는 "주일우 이음 대표와 얘기하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앤솔로지를 제안했는데, 주 대표가 1회성이 아니라 좀더 지속성 있는 매체를 고민해보자고 하면서 계간지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문학동네 출신 조연주 편집장도 편집위원으로 합류했다.
하나의 주제를 바라보는 각 작가의 다채로운 시선을 만나볼 수 있다. 예컨대 2호의 주제 '기후위기'를 우다영 작가는 단편소설 '기도는 기적의 일부'에서 계급의 문제로 다뤘다. 최진영 작가는 '썸머의 마술과학'을 통해 세대의 문제로 접근했다.또 다른 편집위원인 소설가 민병훈은 "3호 필진으로 참여할 예정인데, 작가로서 흥미로운 경험"이라며 "관심 주제를 키워드로 주고 소설을 쓰게 하는 방식이 작가에게도 도전의식,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작가 역시 "4호에 소설을 싣기로 했는데 소설 청탁 받고 이렇게 소설 쓰기에 대한 고민을 즐겁게, 많이 한 건 처음"이라며 웃었다. "4호의 주제는 '지방소멸'인데 저는 서울을 떠나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거든요. 자료조사도 철저히 하고, 지방에 사는 사람 혹은 지방을 떠난 사람들을 인터뷰도 해봐야 할 거 같아요."<긋닛>의 특징 중 하나는 신춘문예 출신 등 등단 여부에 상관 없이 소설을 공모해 싣는다는 것이다.편집위원인 소설가 우다영은 "미등단 작가에도 문을 열어둔 건 <긋닛>이 집중하는 게 소설이기 때문"이라며 "소설은 말하는 장르이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조건은 등단 여부보다도 '해당 주제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느냐'일 것"이라고 했다.
내년 봄 '노동'을 주제로 발간 예정인 3호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용접공 출신 천현우 작가의 소설도 실릴 예정이다. 천 작가는 <쇳밥일지> 등 자신의 경험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에세이로 이름을 알렸다. 그가 소설을 공개적인 지면에 싣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3호의 경우 올해 12월 31일까지 '노동'을 주제로 단편소설을 공모해 당선작을 실을 예정이다. 원고 분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80~100매다. 응모자격에는 제한이 없다. 당선되면 원고료 150만원도 지급한다. <긋닛> 편집부 대표 이메일을 통해 원고를 받는다. '지방소멸'을 주제로 한 4호의 원고 마감일은 내년 3월 31일, '빚(채무)'를 주제로 한 5호 원고 마감일은 내년 6월 30일이다.우 작가는 "<긋닛>이 한 권의 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야기의 장을 여는 시작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동시대의 문제를 함께 토론하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북토크 등 관련 행사도 많이 열려고 한다"고 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