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 울린 베토벤…87세 거장은 펑펑 울었다
입력
수정
지면A18
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 세계 최초 국제우주정거장 생중계
일본우주항공연 프로젝트
식도암 투병으로 왜소해진 몸
휠체어 의지한채 지휘단 올라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와
에그몬트 서곡으로 막 올려
젊은시절의 강렬함 없었지만
예민하고 명료한 손짓은 여전

이날 공연은 일본의 명문 관현악단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으로 막을 올렸다. 몸이 불편한 탓에 지휘자에게 으레 기대하는 큰 동작과 강렬한 눈빛은 없었지만, 어깨 아래에서 예민하게 움직이는 오자와의 손짓은 그 어느 때보다 명료했다. 절도 있는 그의 지휘에 전체 오케스트라는 마치 한 명의 연주자가 선율을 뽑아내듯 응축된 소리로 반응했다.
명장의 실력은 여전히 빛났다. 단 하나의 음도 오자와의 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불편한 몸에도 발까지 구르며 온몸으로 지휘하는 그의 열정에 단원들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연주에 집중했다. 그렇게 오자와의 손에서 탄생한 베토벤의 작품은 웅장하면서도 유려한 선율의 매력을 온 우주에 흩뿌렸다.

감정을 추스른 뒤 마이크를 잡은 와카타는 “지구에서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의 공연 실황을 이곳 ISS에서 들을 수 있는 건 너무나 큰 행운”이라며 “이 프로젝트가 세계를 하나로 묶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또 “이 화합의 정신이 과학, 기술, 음악이 모든 장벽을 초월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란 믿음을 더 굳건하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줄 것”이라고 화답했다.
JAXA 주도의 프로젝트 ‘원 어스 미션(ONE EARTH MISSION)’은 전 세계로 퍼진 코로나19 바이러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고통의 시대를 마주한 지금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분열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협력으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는 1984년 ‘일본 지휘계의 대부’로 불리는 사이토 히데오를 기리기 위해 오자와 주도 아래 발족한 관현악단이다. 그 인연을 토대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무대에서 단원들은 모두 ‘원 어스 미션’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연주했다. 음악이 언어와 인종은 물론 시공간을 초월해 사람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오자와는 공연 이후 서면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같은 행성에 사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주에 공연 실황을 전하는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 와카타를 직접 만나 우주에서 우리의 음악이 어떻게 들렸는지 감상평을 꼭 들어보고 싶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