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도 한 점뿐인 르누아르…홍콩 가고시안선 9점을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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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미술의 왕' 홍콩의 위상 보여주는 갤러리 투어지난 1일 찾아간 홍콩 가고시안 갤러리.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기자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림 속 여성의 우아한 자태, 햇볕이 비추는 듯한 화사한 색조, 부드러운 붓터치…. 인상주의 거장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1841~1919)의 그림이 아홉 점이나 걸려 있었다. ‘한국 대표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 중인 르누아르 작품이 단 한 점이고, 이마저도 지난해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기증 덕에 겨우 얻은 것과 대조적이다. 상업 갤러리에서 미술관급 전시가 열리는 홍콩 미술시장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홍콩 아트투어 완전정복
시내 랜드마크 3개 건물
가고시안·화이트큐브
데이비드즈워너 등 모여
도장깨기 하는 재미
건물 자체가 문화재 '페더'
임차료 자체도 어마무시
메가 갤러리들만 입점
가고시안, 르누아르
초상화·풍경화 전시
홍콩에 왔다면 ‘갤러리 투어’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콩 미술시장은 아시아 최강이다. 가고시안·화이트큐브·데이비드즈워너 등 한국에 없는 세계 최정상급 갤러리들이 중국 ‘큰손’들을 노리고 세계 최고의 작품들을 가져온다. 게다가 전시장을 한번에 둘러보기도 쉽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건물 몇 개만 돌면 홍콩에 있는 주요 외국계 화랑의 80%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고시안·화이트큐브…국내 없는 ‘정상급 화랑들’
핵심 건물은 페더 빌딩, 중국농협은행타워, 에이치퀸즈 빌딩 등 세 곳. 모두 센트럴 지역에 있고, 다들 걸어서 20분 내 거리다. 특히 페더 빌딩과 에이치퀸즈 빌딩은 갤러리가 여럿 몰려 있어 맨 위층부터 한 층씩 내려오면서 ‘도장깨기’하듯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둘러볼 수 있다.페더 빌딩은 1923년 지은 고풍스러운 보자르 양식(고전주의 양식) 건축물이다. 건물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가뜩이나 임차료가 비싼 홍콩에서도 도심에 자리한 랜드마크라는 이유로 임차료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건물이기도 하다.그만큼 여기서 살아남은 갤러리들은 비싼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는 ‘메가 갤러리’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화랑’ 가고시안(미국 기반)이 대표적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르누아르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서는 르누아르의 1870~1910년대 초상화와 풍경화들을 만날 수 있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조세핀 멕세퍼(58)의 개인전을 열고 있는 사이먼 리 갤러리(영국)도 함께 둘러봐야 한다. 두 전시 모두 내년 1월 7일까지 열린다. 현지 정상 화랑 펄램 갤러리(홍콩)는 다음 전시를 준비 중이다.
페더 빌딩을 둘러봤다면 중국농협은행타워 1~2층에 있는 화이트큐브 갤러리(영국)로 가 보자. “전시장을 온통 하얗게 만들어야 관객들이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다”는 미술 이론에 따라 벽, 천장, 조명까지 모두 흰색으로 칠한 게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캐나다 작가 마고 윌리엄슨(46)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과 집 인테리어, 사물 등을 독특한 화풍으로 낯설게 표현한 작품들이다. 전시는 내년 1월 7일까지.
‘갤러리 전용 설계’ 에이치퀸즈 빌딩 ‘도장깨기’ 해볼까
마지막 목적지는 2017년 ‘아트&라이프 스타일 빌딩’을 표방하며 문을 연 에이치퀸즈 빌딩이다. 설계자는 홍콩의 유명 건축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윌리엄 림. 쾌적한 관람 환경을 위해 층고를 4.65m로 높였고, 창문도 자외선이 투과할 수 없는 삼중 유리로 만들었다. 덕분에 데이비드즈워너(미국), 하우저앤드워스(스위스), 페이스(미국), 아시아 최대 화랑 탕컨템퍼러리아트(태국), 화이트스톤 갤러리(일본) 등 정상급 화랑들이 앞다퉈 입주했다.데이비드즈워너는 미국의 유명 화가 앨리스 닐(1900~1984)과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1923~1971)의 전시를 동시에 열고 있다. 닐의 작품은 2013년 갤러리현대 전시를 통해 국내 관객들과 만난 적이 있다. 아버스의 이름 역시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친숙하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작품을 전시한 첫 번째 미국 사진가이기 때문이다. 두 전시 모두 오는 21일까지 열린다. 하우저앤드워스에서는 미국의 유명 현대미술가 마이크 켈리(1954~2012)의 전시가 내년 1월 25일까지 이어진다.서양 거장 외에 현지에서 인기 있는 중국계 작가들의 작품을 내건 갤러리도 많다. 화이트스톤에서는 위예라이(23)의 전시가 진행 중이다. 전시장에 나온 그의 작품은 작가의 어린 나이와 수천만원에 달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개막 직후 완판됐다. 전시는 내년 1월 25일 끝난다. 페이스갤러리는 중국의 중견 설치미술가 인슈전(59)의 전시를 오는 23일까지 열고, 탕컨템퍼러리아트는 15일부터 홍콩 작가 제이드 우(30)의 전시를 연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
홍콩=성수영/오현우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