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다시 만난 '브로드웨이 42번가'…초심 돌아가게 만들죠"

2016년 이후 다섯 시즌 연속 주연…"작품의 대표 배우 됐죠"
"코로나로 지난 시즌 조기 폐막…관객 다시 만나 감개무량"
좌충우돌 끝에 뮤지컬 '프리티 레이디'는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무명 앙상블 배우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 동화 같은 해피 엔딩을 맞이하며 마냥 들뜬 다른 인물들과 달리, 이를 지켜보는 연출가 줄리안 마쉬의 표정에는 왜인지 모를 씁쓸함이 맴돈다.

지난달 5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연출가 줄리안 마쉬 역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는 이종혁은 8일 예술의전당에서 한 인터뷰에서 "화려한 쇼 뒤에 가려진 1930년대 당시 공연 업계의 씁쓸한 현실을 보여주는 역할"이라고 소개했다.
이종혁이 연기하는 줄리안 마쉬는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찬 주인공 페기 소여와 대비되며 쇼 비즈니스의 현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돈 많은 스폰서의 취향에 따라 작품의 내용부터 캐스팅까지 간섭을 받으며 작품 내내 스트레스를 받는 줄리안 마쉬는 화려한 무대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객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종혁은 이러한 작품의 배경이 되는 현실을 연기로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한다고 했다.

"최대한 브로드웨이의 뒷면을 보여주는 쪽으로 연기를 하려고 해요. 마냥 순진하고 철이 없는 페기 소여의 열정도 줄리안 마쉬에겐 피곤하게 느껴지는 거죠.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자식 같은 공연을 자기 손에서 떠나보내는 씁쓸함을 담으려 합니다.

"
이종혁은 2016년부터 처음 이 작품에 출연해 2022년까지 열린 모든 공연에서 이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올드한 고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할수록 재미있고, 후배 배우들의 열정을 보면 초심으로 돌아가게 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주변 동료 배우들도 '언제 적 작품을 계속하냐'는 식으로 말하다가도 막상 공연을 보고 나면 생각보다 재밌다고들 해요.

같은 역을 계속해서 지루하기보다도 이 작품의 대표 배우가 된다는 게 기분이 좋죠. 함께 출연하는 후배 앙상블 배우들에게서 기운을 정말 많이 받습니다.

"
작품 속 줄리안 마쉬는 현실을 대변하는 인물이지만 배우 이종혁은 여전히 무대에 대한 열정과 관객을 향한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시즌에는 공연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당시 공연이 끝나고 마스크를 끼고 소리도 못 지르는 관객들에게 여러분이 있어 줘서 힘이 된다고 인사를 하는데 매번 울컥했어요.

관객의 소중함을 매일 피부로 느꼈죠. 결국 당시 팀 내에 접촉자가 생겨서 예정보다 빨리 막을 내리게 됐는데, 마지막 무대에서 우느라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죠. 이번에 이렇게 다시 관객과 만나게 돼서 감개무량합니다.

"
1997년 서울예대 동문과 함께한 소극장 연극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한 그는 무대가 여전히 자신의 뿌리라고 강조했다.

"연극 무대가 연기자로서 제 뿌리라고 생각해요.

'관객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 말이 정말 뻔한 말이지만 진짜예요.

내 연기를 보는 관객의 눈빛과 커튼콜 때 손을 흔들어주는 게 전부 에너지로 남습니다. 가능한 오래 무대에 서야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