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허무는 나만의 예술[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입력
수정
중년의 남성 바이올리니스트인 시몽은 작은 초등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시작합니다. 파리교향악단의 공연에서 학생들이 연주를 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임무를 맡은거죠. 그 곡은 '아라비안 나이트' 또는 '천일야화'로 잘 알려진 이야기를 소재로 한 교향곡 '세헤라자데'입니다. 러시아 출신의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1844∼1908)가 만든 음악입니다. 그런데 그가 맡은 학생들은 악기 한 번 제대로 연주해 보지 못한 아이들입니다. 게다가 단 30초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장난만 칩니다. 시몽이 좌절하고 있던 사이, 바이올린에 관심을 갖는 아이 아놀드가 나타납니다. 몰래 수업을 엿보던 아놀드는 혼자 연습까지 하더니 탁월한 실력을 보여줍니다. 라시드 하미 감독의 영화 '라 멜로디'(2018)입니다. 철부지 아이들이 음악을 함께 배우며 성장하고, 훌륭한 연주를 해내는 모습이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열심히 연주 연습을 하고, 그 결과물을 직접 청중들 앞에 선보이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세상엔 아무리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명확하다 하더라도, 음악은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습니다. 진정성 있는 연주를 한다면 어린아이라도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죠.
림스키코르사코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역시 음악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를 허물고, '세헤라자데'뿐 아니라 '왕벌의 비행' 등 명곡들을 만들어냈죠. 누구보다 독창적이고 새로운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틈틈이 혼자 음악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18살에 작곡가 밀리 발라키레프를 만나게 됐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바다에 나가지 않는 날이면 그를 찾아 음악을 배웠죠.
아마추어에 불과했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뜻밖의 놀라운 업적을 쌓게 됐습니다. 그는 21살에 처음으로 쓴 교향곡 1번을 초연했습니다. 이 곡은 러시아인이 작곡한 첫 번째 교향곡이기도 합니다. 공연도 큰 성공을 거둬 많은 사람들이 림스키코르사코프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이일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전문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27살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의 교수가 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이론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즉각 관현악법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의 푸가 음악을 들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는 이론상 오류가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정규교육이 아닌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다 보니, 그의 관현악법에는 남다른 개성이 담겨 있습니다. 신비롭고 매혹적인 분위기, 풍요로운 색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론 대담하고 파격적이기도 하죠. 여기엔 그가 러시아 전설이나 문학을 중심으로 방대한 서사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음악을 만든 영향도 큽니다. '세헤라자데'의 소재가 된 '아라비안 나이트'는 구전 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왕비가 다른 남자와 만나는 걸 보고 상처를 받은 샤리아르 왕은 왕비를 죽입니다. 이후에도 여자를 믿지 못하게 된 그는 매일 밤 여성들을 데려다 동침한 후 죽여버리죠. 이를 보고 한 대신은 탄식을 금치 못하며 나라의 앞날을 걱정합니다. 그리고 이 모습을 대신의 딸인 세헤라자데가 보게 됩니다.
세헤라자데는 아버지와 나라를 위해 왕의 신부가 되길 자청합니다. 그는 신부가 된 첫날 밤부터 왕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왕은 이야기에 빠져듭니다. 계속 이어질 이야기를 더 듣기 위해 세헤라자데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죠. 그렇게 1001일이 지나 마침내 이야기가 끝나게 되고, 왕은 세헤라자데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이를 4악장의 음악으로 구성, 이국적이면서도 호소력 짙은 선율을 들려줍니다. 김연아 선수가 2009년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배경 음악으로 사용해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왕벌의 비행'도 오페라 '술탄 황제의 이야기'에 나오는 곡입니다. 수많은 왕벌이 백조를 공격할 때 나오죠. 특히 윙윙 거리는 왕벌의 날갯짓을 묘사한 선율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후 림스키코르사코프는 관현악법의 대가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음악가들이 그의 대표작들을 통해 관현악법을 익힙니다. 예술가가 된다는 건 나와는 무관한 멀고 먼 일처럼 느껴집니다. 직접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기도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죠. 하지만 예술엔 정답이 없습니다. 차근차근 배우다 보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펼쳐 보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과감히 용기를 내어, 나의 내면에 꽁꽁 숨어 있던 예술가를 끄집어 내는 건 어떨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