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호의 영화로 보는 삶] 부다페스트 소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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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프롤로그>
무려 120억 달러(15조 6,000억 원)의 K2 전차와 K9 자주포 등 우리나라 무기가 폴란드와 수출계약을 체결했고 1차 물량 도착 시 폴란드 대통령까지 나와서 맞이하기도 했다. 폴란드는 2차세계 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무려 110만 명이 나치에 의해 살해당하는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어 자주국방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머나먼 다리(Bridge too far), 1977>에서 연합군 수뇌부는 전쟁을 조속히 끝내기 위해 무리한 작전을 강행하다가 어마어마한 병사들이 개죽음을 당하는 비극을 초래했다. 김춘수 시인의 <부다페스트의 소녀의 죽음>에 나왔던 이념에 희생된 안타까운 주검을 떠올리게 된다. 과거 나약했던 국력으로 외세의 침략에 많은 고통을 당했던 우리나라가 첨단 무기 수출을 하는 개가를 이뤄냈지만 과연 나라를 통치하는 권력자들은, 무서운 삶의 전쟁에서 청년들을 구할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영화 줄거리 요약>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성공한 연합군이 독일 본토로 진격을 서두르던 2차대전 말기에 주력 부대가 독일에 가까워지고 노르망디 항구와 멀어짐으로써 보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진격이 늦어지자, 연합군 수뇌부는 독일의 배후인 네덜란드에 대규모 연합군 공수부대를 투하해 독일로 연결되는 주요 교량 3개를 점령 후, 지상군을 투입해 독일의 뒤통수를 칠 작전을 강행하지만 예상과 다른 전황이 전개되면서 연합군은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관전 포인트>
A. 마켓가든 작전이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독일군이 전의를 상실했다고 방심하게 됐고, 연합군 리더들은 서로 베를린을 먼저 점령하여 전쟁의 영웅이 되고 싶어진다. 하지만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벨기에 지역에서 진군을 멈추게 되면서 보급로가 끊기게 되자 연합군의 영국군 몽고메리 장군은 독일 점령지인 네덜란드에 대규모 공수부대와 지상군이 연합한 마켓가든 작전을 통해 독일군을 라인강 너머로 몰아내고 베를린에 입성하려고 한다.
B. 예상보다 달라진 전황은?
1944년 9월 17일 에인트호번에 낙하한 미 101공수사단은 가장 근접한 교량을 성공적으로 확보하지만 에인트호번 북쪽의 '손' 교량은 독일군이 먼저 점령하여 폭파시키는 바람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네이메헌 남쪽에 강하한 미 82공수사단은 아른헴에서 신속하게 파견된 독일군 부대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네이메헌 남쪽의 그레이브 교량을 제외한 어느 것도 탈취하지 못하고 대치상태에 돌입한다. 이 상황에서 물과 숲이 육지보다 많은 네덜란드의 자연 특수성으로 통신기기가 작동하지 않아 추가 병력과 보급품이 공수되지 못해 숨어있던 독일 기갑 부대의 막강한 화력으로 큰 피해를 입고 독일군에 포위된 영국군 제1공수사단 10,000명 중 겨우 2,000명이 철수할 수 있게 된다.
C.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마켓가든 작전은 미국의 패튼 장군과 독일 입성을 경쟁하던 영국 몽고메리 장군의 주도로 이루어졌는데 잘못된 작전으로 병사들이 수천 명씩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오만한 지휘부의 무능과 무책임함을 보여준다. 독일군에 포위당해 사지에서 8일간을 버티다가 철수한 영국 공수부대 어쿼하 소장은 많은 부하들을 잃고 돌아와 작전 책임자인 브라우닝 중장에게 작전 실패에 대한 유감을 토로하자, "우리는 너무 먼 다리까지 가려고 했었나 봐"라는 무책임한 말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을 다룬 <지상 최대의 작전>, <벌지 대전투>, <미드웨이>, <도라! 도라! 도라!>같은 연합군의 승리에 초점을 맞춘 영화와 달리 작전의 과오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뒤집어보게 하는 점에서 큰 교훈을 주는 전쟁영화이다.
D. 초호화 캐스팅의 인물은?
영화<간디, 1989>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영국이 전설적인 아텐보로 감독은 초호화 캐스팅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하였다.
@로버트 레드포드: 미 82공수사단 대대장 줄리언 쿡 소령 역으로 불가능한 도하작전을 통해 독일군이 점령한 철교에 교두보를 확보한다.
@숀 코네리: 영국 공수부대 어퀴하트 소장 역으로 최전방에 침투하여 독일군의 막강한 화력에 포위되지만 긑까지 버티며 결사항쟁을 하게 된다.
@진 핵크만: 폴란드 독립 공수여단장 스태니슬로 소사보우스키 소장 역으로 작전 시작 때부터 무모한 자살행위라고 반대하며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결국 그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몽고메리 원수는 그에게 작전 실패의 책임을 뒤집어씌워 좌천하게 된다.
@안소니 홉킨스: 영국 1공수사단 대대장 프로스트 중령 역으로 독일군이 항복을 권유하지만 끝까지 아른험 대교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라이언 오닐: 미 공수 사단장 제임스 게빈 준장 역으로 쿡 소령에게 도하작전을 통해 독일군 네이메헨 대교를 탈취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강인한 군인이다.
@제임스 칸 :미국 공수부대 에디도헌 상사 역으로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중대장을 짚차에 태우고 독일군 진영을 필사적으로 탈출해 아군 야전병원에 데려오지만 군의관이 봐주지 않자 권총을 들이대며 중대장을 치료하게 하여 목숨을 건져내게 된다.<에필로그>
마켓가든 작전이 시작되기 전 네덜란드의 레지스탕스들이 보내온 정보에는 숨겨진 독일군 기갑사단의 사진이 있었는데도 수뇌부의 결정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보고를 무시하다가 결국 17,000명의 병사가 전사, 부상, 포로로 희생되는 큰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지금도 각종 현장에서 불편한 진실을 숨겨서 발생되는 무서운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장기화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신음하고 있으며 핵 전쟁의 전운까지 감도는 혹한의 시대에, 우리의 정치 권력자들은 청년들을 삶의 전쟁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작전을 세우고 있는가?
<한경닷컴 The Lifeist> 서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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