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라 예산보다 장관 해임안 처리가 더 급했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이례적으로 휴일인 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박진 외교부 장관에 이어 두 번째 국무위원 해임 건의안 가결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사퇴하면서 예산안 정국은 더 얼어붙고 있다.

민주당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이 장관이 재난 및 안전 관리의 총책임자로서 사전 대책을 제대로 수립·집행하지 못한 것을 해임안 처리 이유로 들었다. 물론 이태원 참사에 책임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땅히 그에 따른 문책이 있어야 한다. 이 장관도 법 이전에 도의적·정무적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민주당이 해임안을 관철하는 과정을 보면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은 지난달 23일 국민의힘과 ‘예산안 처리 뒤 이태원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다. 그런데 그 직후 느닷없이 이 장관 해임 건의안을 들고나왔다. 국정조사가 실시되면 이 장관 거취는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는데도 해임안 카드를 꺼내 싸움판을 키웠다. 애초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은 명분일 뿐 정권 공격에만 관심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해임안을 추진한 것도 의문을 낳는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헌법재판소 결정에 수개월이 걸리는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이태원 참사를 질질 끌어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더욱이 예산안과 법안 처리가 한시가 바쁜 시점에서 해임안을 밀어붙인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예산안은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 2일을 넘긴 데 이어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9일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11월 30일까지 예산안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附議)토록 한 국회선진화법 시행(2014년) 이후 처음이다.

법인세 등 쟁점에 대한 여야 간 이견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임안이 정국 블랙홀을 만든 탓도 크다. 정기국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예산안과 관련 법안 처리가 뒤로 밀려나면서 정략의 희생양이 돼 버린 꼴이다. 민주당이 예산안 처리 명목으로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한 것을 보면 ‘이재명 대표 방탄국회’를 이어가기 위한 속셈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든다. 그래 놓고 입버릇처럼 ‘민생’을 말할 자격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