年 36% 사채 써도 파산…"중소 건설사 내년 상반기 줄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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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게임 내몰린 건설사
지방 중견사 우석·동원건설 부도
인건·자재비 뛰어 공사비 20%↑
미분양 쌓이고 PF대출 차환 막혀
대형사도 유동성 위기로 희망퇴직
"내년 신규수주 최대 40% 줄여라"
지방 중견사 우석·동원건설 부도…인건·자재비 뛰어 공사비 20% ↑
미분양 쌓이고 PF대출 차환 막혀…대형사도 유동성 위기로 희망퇴직
수도권 소재 A건설은 매일 아침 비상상황점검회의를 연다. 공사 중인 서울 300실 오피스텔 분양률이 30%를 밑돌면서 시행사가 부도 위기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다. 부도가 나면 미분양을 떠안고 자체 자금으로 공사해야 한다. 벌써 일부 협력사는 자금 지연을 우려해 공사에 늑장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차환 상황도 막혀 있어 내년 경영 계획 수립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업계에 ‘부도’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인건비가 급등한 데다 미분양은 쌓이고 금융회사가 돈줄을 죄면서 생존 갈림길에 선 건설사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주택 공급 시스템 자체가 멈춰 설 위기”라며 “정부가 시장을 옥죄는 규제를 풀어 정상화하지 않을 경우 주택업계가 고사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사업계획 ‘표류’…중견사 줄도산 위기
시공능력평가 10위 내 대형 건설사 중 내년 사업계획을 확정한 곳은 아직 한 곳도 없다. 대부분이 검토 중이어서 경영 목표 없이 새해를 맞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 내년 신규 수주를 올해 대비 최대 40%까지 줄이겠다는 대형사도 나오고 있다. 일부 대형사는 연말 희망퇴직 등 구조조정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대형사에 비해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지는 중소·중견사도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아파트 실거래가격이 20% 이상 급락한 지방에 사업지가 몰려 있어서다. 게다가 이전에 공급한 상가·오피스텔, 지식산업센터 등 이른바 ‘수익형 부동산’에도 수요자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실적 악화를 견디지 못한 일부 건설사는 파산 상태다.지난 9월 충남지역 종합건설업체 우석건설이 부도 처리된 데 이어 경남지역 시공능력평가 18위인 동원건설산업도 최근 부도가 났다. 동원건설산업은 대구에 지은 근린생활시설이 대거 미분양되는 바람에 시행사가 파산하면서 자금난에 몰렸다. 연 36% 사채까지 동원했으나 22억원짜리 어음 결제에 실패했다.
미분양에 입주난까지 겹치면서 내년 상반기 중소·중견사가 연쇄 도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까지 유동성 위기로 휘청이는 마당에 단순 도급 위주의 중견사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다”며 “내년 상반기에 중소·중견사의 줄도산이 현실화할 공산이 크다”며 한숨을 쉬었다.
금리 리스크 속 불확실성 지속
건설업은 가파른 금리 인상과 급등한 공사비, 물류 조달 차질 등 대내외 변수가 복잡하게 꼬여 있다. 게다가 급증하는 미분양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B건설이 충남 천안에서 공급한 1000가구 규모의 아파트 청약에 700여 건이 미달했다. 이달 초 C건설이 전남 함평군에 공급한 아파트(232가구)는 특별공급과 1순위 청약에서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가파른 금리 인상 여파로 10월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7217가구로 5만 가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건설 원가 급등으로 적자 공사가 이어지는 것도 부담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공사에 투입되는 원자재·노무·장비 원가(건설공사비지수)가 2년 전에 비해 20%가량 상승했다. 10월까지 주택 착공 실적이 33만 가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6% 급감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10대 건설사는 올해만 공사비가 당초 예상보다 5000억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업계에선 작년 하반기 이후 수주한 공사가 마무리되는 2024년까지 손실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금융당국이 PF 등 부동산 대출의 빗장을 잠가 자금난은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신규 개발 시장이 브리지론과 PF 대출 중단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현장이 많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정부의 선제적인 조치가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건설사 대표는 “건설산업이 연착륙하기 위해선 거래가 이뤄지고 실수요자가 내 집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가로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일/박종필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