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 겪은 DRX, 소년만화의 끝은 달콤하지 않았다 [이주현의 로그인 e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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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의 로그인 e스포츠] 는 게임을 넘어 스포츠, 그리고 문화콘텐츠로 성장하고 있는 e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상 깊었던 경기들은 물론, 궁금했던 뒷이야기 나아가 산업으로서 e스포츠의 미래에 대해 분석합니다.지난 10일 프레딧 브리온이 랩터(전어진)를 콜업하고 카리스(김진홍)을 영입하며 1군 로스터를 완성 지었다. 2023 시즌을 대비한 LCK(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 10개 팀의 선수단 구성이 완료된 것이다. 추가 영입도 가능하지만 모든 선수단의 기본적인 골격은 모두 갖춰진 상태다.이번 스토브리그 동안 10개 구단 중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팀은 2022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우승을 해낸 DRX다. DRX는 롤드컵 LCK 4번 시드로 출전해 '도장깨기'를 거듭한 결과 '소년만화' 같은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들의 서사는 전 세계 팬들을 감동하게 했고 한국에서는 데프트(김혁규)의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밈이 롤드컵을 넘어 월드컵까지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소년만화의 엔딩은 달콤하지 않았다.
DRX는 지난 4일 2023 LCK 선수단을 발표했다. 라스칼(김광희), 크로코(김동범), 주한(이주한), 페이트(유수혁), 덕담(서대길), 베릴(조건희) 등 6명이다. 올해 롤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린 주전 선수 중에선 서포터인 베릴과 서브 선수였던 주한만이 DRX에 남게 됐다. 데프트(김혁규)는 담원 기아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DRX에서 데뷔해 팀의 상징으로 불렸던 표식(홍창현)은 북미 리그 LCS의 팀 리퀴드 혼다(TL)에 새 둥지를 틀게 됐다. 파이널 MVP에 꼽힌 킹겐(황성훈)과 초신성 미드 라이너 제카(김건우)는 함께 한화생명 e스포츠로 팀을 옮겼다.멋진 성공 스토리를 써 내려간 팬들의 기대를 받았던 DRX는 아쉽게도 다음 시즌에 선수단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2014년 삼성 갤럭시 화이트(이하 삼성 화이트)에 이어 8년 만에 롤드컵 '승자의 저주'가 재현된 것이다.2014년 삼성 화이트는 롤드컵 우승을 해냈으나 이후 한 달 만에 주전 선수들이 모두 팀을 떠났다. 마타(조세형)를 비롯한 선수들이 중국리그 LPL로 이적했다. 팀 자체가 해체된 후 삼성 갤럭시라는 이름으로 변경됐다. 당시 삼성 화이트 구단을 운영하던 삼성은 운영 비용을 축소했다. 반면 선수들의 몸값은 롤드컵 우승으로 훌쩍 치솟았다. 구단과 선수 간의 눈높이 차이가 좁혀지지 못한 것이 해체의 원인으로 꼽힌다.
이번 DRX가 승자의 저주를 겪은 상황도 비슷하다. 올해 스토브리그를 앞두고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엔데믹 등으로 경기가 얼어붙었다. 팀마다 차이가 있지만 LCK 구단을 운영하는 기업들의 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다. 이례적으로 한화생명 e스포츠나 KT 롤스터가 거물급 선수를 영입했지만, 농심 레드포스의 경우 아예 2군 선수단을 전원 콜업하는 등 대부분 팀이 작년과 달리 소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사모펀드 운용사인 에이티유파트너스가 최대주주인 DRX 역시 상황이 녹록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 코스닥 상장을 준비 중인 DRX는 신한은행, 레드불 등 다양한 스폰서를 확보했다. 하지만 전략적 투자를 받았던 위메이드가 암호화폐 위믹스 상장폐지 사태로 휘청이는 등 좋지 않은 상황에 놓였다. 2021년 DRX의 영업적자는 64억 원으로 2020년 28억 원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물론 금전적인 부분이 전부는 아니었겠지만 이런 상황이 선수들과의 재계약 과정에 어려움을 더했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 DRX에서 함께 활동한 선수들은 이별에 대해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데프트는 FA(자유계약 선수)가 발표된 11월 22일 개인 방송을 통해 “팀원들도 다 같이 하기를 원했고, 최대한 조건을 보지 않고 재계약을 원했으나 잘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주전 선수들 모두 재계약 의사가 있었다는 얘기다. 표식 역시 지난달 30일 한 개인방송 BJ와의 방송에서 “5명은 다 같이 하고 싶었다. 근데 잘 안됐다”라며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그는 "롤드컵 결승까지 치르고 와보니, 이미 다른 팀들은 대부분 (다른 선수와)접촉을 끝낸 상태였다"라며 "스토브리그 참여가 늦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롤드컵 우승이라는 영광을 누렸지만 스토브리그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모순에 대한 아쉬움을 전한 것으로 보인다.
이주현 기자 2Ju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