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민 칼럼] 국민 속인 習의 '칭링'과 文 '탈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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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과학의 영역 침범한 폐해아편전쟁에서 영국군에 참패한 직후 청나라 지휘관 혁산은 도광제에게 승전한 것으로 보고했다. 청군이 영국군에 헌납한 600만 냥의 배상금은 아편 손실을 챙겨주기 위해 황제가 하해와 같은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고 했다. 영국군을 “인간 이하 야만인들”로 여기는 도광제에게 불편한 진실을 고한 관리들은 좌천이나 참수형에 처해졌다.
검증 안된 도덕 앞세우면 늘 함정
윤성민 논설위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2020년 3월 우한 봉쇄로 감염 추세가 잠잠해지자 때 이르게 코로나와의 ‘인민 전쟁’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지난 10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7중전회에서는 “전염병과의 전면전·봉쇄전을 수행해 인민의 생명을 최대한 보호했다”며 시진핑의 무차별적 제로 코로나 정책 ‘칭링(淸零)’을 최대 업적으로 거듭 찬양했다.그러나 얼마 안 있어 도광제처럼 시진핑의 승리도 거짓으로 판명 났다. 중국 내외의 거센 반(反)칭링 ‘백지 시위’에 겁먹은 중국 정부가 고강도 봉쇄를 풀고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면서 제로 코로나 정책이 실패했음을 자인했다.
중국의 코로나 대응 실패는 정치가 과학의 영역을 집어삼킬 때 어떤 보복을 부르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방역 전문가들은 여러 차례 칭링의 완화를 요구했고, 올 2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확산 때도 국무원 주재 화상회의에서 60여 명의 감염 전문가가 일상적 생활 속에서 방역정책을 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보고받은 시진핑이 불같이 화를 낸 뒤론 누구도 봉쇄 완화를 입에 올릴 수 없게 됐다.
시진핑이 칭링에 목을 매온 이유는 이중적이다. 외견상으론 중화주의를 과시하는 것이지만 이면엔 중국의 치부를 감추려는 속셈이 더 크다. 백신 민족주의를 내걸고 자체 개발한 시노팜과 시노백은 잘 알려진 대로 ‘물백신’이다. 그인들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방식의 미국 화이자, 모더나의 효능이 훨씬 좋다는 것을 모를 리 없겠지만, 14억 중국인의 3회 접종 비용만으로 170조원가량을 미국 측에 지불해야 한다는 데는 자존심이 앞섰을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스콧 로젤의 책 제목 ‘보이지 않는 중국’이 지칭하는 열악한 중국 농촌에 코로나가 퍼질 때 드러날 의료 인프라의 민낯도 봉쇄 정책을 고수한 주원인 중 하나다.국가 지도자가 그릇된 신념으로 현실을 호도할 때 국가의 명운을 어떻게 그르치는지는 중국까지 볼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 내내 종교처럼 떠받들던 탈원전 폐해는 어떠한가. 세계 최고 경쟁력의 한국 원전 생태계는 5년 암흑기를 거치면서 황폐해졌다. 미국 증시에도 상장된 한국 대표 공기업 한국전력은 문 정부가 탈원전에 대한 비난을 모면하려고 전기료를 꽁꽁 묶어둔 탓에 파산을 걱정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됐다. 급기야 한전 경영난이 자금시장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자 한전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법안이 상정됐으나, 탈원전의 장본인인 거대 야당의 무책임으로 부결과 재상정을 추진하는 블랙코미디를 연출하는 상황이다.
시진핑의 칭링과 문 정부의 탈원전에는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 검증되지 않은 그럴싸한 도덕적 명분으로 자기 최면을 걸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봉쇄 초기 감염자가 미미한 데 비해 서방국가들의 확산세가 대두되자 “부패한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적 통제의 완벽한 승리”라고 흥분했다.
재난 영화를 보고 탈원전에 대한 마음을 굳혔다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 초안을 짠 사람들은 시쳇말로 원전과는 ‘1도’ 관련이 없는 미생물·하천토목 전공 환경론자들이다. 정치인의 말이 달콤할수록 과학과 사실에 더 주목해야 한다. 후일 속았다고 하기에는 그 피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