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 욕구 파고든 '재벌집 막내아들'…시청률 급증 이유있네

"좌절감 젖어 있는 청춘들, 다시 태어나는 판타지 회귀물에 열광"
현실과 허구의 절묘한 조합…"시대극 같은 재미로 시청자층 다변화"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인생을 '리셋' 시키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파고들며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12일 방송가에 따르면 '재벌집 막내아들'은 방영 4주 만에 시청률 21.1%를 기록하며 올해 최고 히트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시청률 20%를 넘은 미니시리즈는 '재벌집 막내아들'이 처음이다.

드라마는 순양그룹에 몸 바쳐 일하던 비서 윤현우(송중기 분)가 억울한 죽임을 당한 뒤 순양그룹 일가의 막내 진도준으로 다시 태어나 두 번째 인생을 맞는 이야기를 그린다.장르를 따지자면 판타지 회귀물로, 죽었다가 되살아난 주인공이 앞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을 재설계하는 서사가 특징이다.

고단한 삶을 살던 주인공이 인생역전에 성공하는 판타지는 누구에게나 있는 욕망이란 점에서 인기가 높은 소재다.

최근 웹툰과 웹소설 분야에서는 '회·빙·환(회귀·빙의·환생)'이라고 불리며 주류 장르로 자리 잡았고, 인기작들이 영상화되면서 방송가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사람들이 인생 '리셋'에 열광하는 이유에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정서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좌절감에 젖어 있는 청춘들은 인생을 다시 시작해 승승장구하는 판타지 회귀물을 통해 욕망을 투영시킨다.
극 중 재벌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 윤현우는 순양가 사람들을 위해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변기를 고쳐달라는 사모님의 호출에 컵라면도 못 먹고 뛰어나가고, 난폭하게 난동을 부리는 부회장을 진정시키려다가 골프채에 맞아 얼굴을 다치기도 한다.

고졸 특채라는 출신이 발목을 잡아 승진은커녕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할 것 같던 윤현우는 회귀를 통해 단번에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다.

할아버지에게 분당 땅 5만 평을 용돈으로 받아 20대 초반에 240억원대 자산가가 되고, 인터넷 서점으로 출발한 미국 업체에 과감하게 배팅해서 900% 수익률을 올린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 대비해 전 재산을 달러로 바꿔 돈을 쓸어 담기까지 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 전반적으로 계층 간 불평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널리 퍼져있다"며 "대중들은 주인공이 손쉽게 신분 상승을 이루고 승승장구하는 문화 콘텐츠를 보며 대리만족을 꾀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벌집 막내아들'이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부분은 재벌가 이야기에 근현대사를 녹여 현실과 판타지를 절묘하게 버무렸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당선, KAL기 폭파 사건, 1997년 외환위기 등 1980∼1990년대 실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을 담는다.

반도체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밀고 나가는 순양그룹과 라이벌로 나오는 대영그룹은 각각 한국의 대기업 재벌 그룹 총수 일가를 연상하기도 한다.
이런 장치들은 허구적인 판타지에 현실감을 입혀 몰임감을 높인다는 평을 받는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고 이병철 회장의 초밥 에피소드, 고 정주영 회장의 한복 사랑 등을 언급하며 '재벌집 막내아들' 등장인물들의 모티브가 된 재벌 총수를 추리하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재벌집 막내아들'은 판타지이지만, 익히 알고 있는 현대사를 다루다 보니 시대극 느낌을 주기도 한다"며 "시청자들에게 전개를 예측하고 실제 있었던 사건과 대조해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고 짚었다.

또한 "1987년에서 시작해서 현재 시점까지 아우른다는 점에서 시청자층을 넓힐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배우들의 구멍 없는 탄탄한 연기도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이성민은 디테일을 살린 사투리와 강렬한 눈빛 연기로 재계 1위 회사를 일궈낸 진양철 회장의 카리스마와 집념, 노욕 등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다.

송중기 역시 극중 이성민과 팽팽하게 대립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가 하면 때로는 멜로 눈빛을 선보이는 등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조연 배우들의 흠 잡을 데 없는 열연도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특히 진양철의 고명딸로 출연한 김신록은 감초 연기로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냈고, 순양가의 장손인 진성준 역의 김남희, 그의 배우자 모현민 역을 맡은 박지현 등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