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민영화했더니 또…우리금융에 드리워진 낙하산 그늘

손태승 회장, DLF 관련 대법원 선고에 촉각
우리금융 내부 출신도 친정부 인사?

노조 "명분 없는 친정권 인사 온다면 강력투쟁"
우리금융그룹 전경
연말 금융권 최고경영자(CEO) 인사 시즌을 앞두고 관치의 악령이 되살아났다.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이 연임될 것이란 예상을 깨고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가 낙점되면서 낙하산 인사의 신호탄이 켜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 정부 출범 후 금융지주 회장 연임이 줄줄이 좌절되는 가운데 대법원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징계취소 소송 판결을 앞두고 있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15일 손 회장 대법원 선고 뒤 16일 임추위 가동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손태승 회장이 이끌고 있는 우리금융지주의 차기 수장 자리에 경제관료 출신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앞서 NH농협금융지주 회장 후보로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단독 추천되면서 금융사 및 정책금융기관에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 합성어)들의 복귀가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다.3연임에 도전하고 있는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라임펀드 불완전 판매(이하 '라임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를 받으면서 연임에 급제동이 걸린 상태다. 당초 업계에선 손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높게 점쳤지만 라임사태와 관련 1년 6개월가량 징계를 미뤘던 금융당국이 갑작스레 중징계(문책경고) 결정을 내리면서 손 회장을 밀어내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 주주가 많아 상대적으로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다는 신한금융그룹에서도 변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3연임 가능성이 높았던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돌연 사퇴의사를 밝히고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낙점되면서 정부와의 교감설 등 각종 추측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채용비리 무죄판결을 받으며 사법 리스크를 해소했던 조 회장이 사퇴 이유로 라임사태에 대한 책임과 세대교체를 통한 변화를 들면서 손 회장의 부담이 가중됐다는 평가다. 라임사태에 대한 책임으로 조 회장이 받은 징계(주의적 경고)는 손 회장보다 수위가 낮다.

손 회장은 오는 15일 DLF 중징계 관련 대법원의 선고를 앞두고 장고를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승소한 만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확정을 받으면 라임사태에 관련한 중징계에 대해서도 소송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금융 이사회도 이번 대법원 판단을 지켜본 뒤 16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가동할 예정이다. 현재 우리금융 사외이사는 총 7명으로 노성태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 박상용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 윤인섭 전 푸본현대생명 이사회 의장, 정찬형 전 한국투자신탁운용 부회장, 신요환 신영증권 고문, 장동우 IMM인베스트먼트 대표, 송수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등으로 구성돼있다.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조준희 전 YTN 사장 등 거론

현재 경제 관료 출신들 중에선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임 전 위원장은 전남 보성 출신으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 24회로 관료계에 입문했다. 옛 기획재정부인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 국제금융국 등에서 일하다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총리 실장 등을 맡았다. 관료계를 떠나 농협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했던 임 전 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으로 임명된 후 2016년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에 지명된 바 있다.

임 위원장은 정부 요직을 수 차례 거치면서 정치권 신망이 두터워져 윤석열 정부에서도 초대 경제부총리 후보군에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조준희 전 YTN 대표이사는 기업은행의 첫 내부 공채 출신 은행장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기업은행장을 지냈다. 경북 상주 출생으로, 한국외대 중국어과를 졸업한 뒤 1980년 중소기업은행(현 기업은행)에 입사해 도쿄지점장, 부행장 등을 거쳤다. 이후 YTN으로 자리를 옮길 땐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엔 윤석열 대통령 대선캠프에서 직능본부 금융산업지원본부장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조준희 전 YTN 대표이사.사진=한경DB
그러나 특수성을 가진 농협금융과 달리 완전 민영화가 2년도 채 안된 우리금융 수장에 낙하산 인사를 앉히기엔 정부 부담이 클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특히 임 전 위원장은 금융위원장 재임 당시 우리은행 민영화를 선언했던 만큼 노동조합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내려오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은행 민영화 당시 과점주주를 모집하며 '정부 개입은 없다. 경영권 간섭안하겠다'고 선언했던 분이 임 전 위원장"이라며 "완전 민영화 이후 조직이 자리를 잡는 시기에 임 전 위원장이 다시 내려온다는 건 본인도 부담이 클 것이고 과점주주들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우리금융지주 내부에선 '어렵게 완전 민영화가 된 만큼 내부 출신 인사가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강하게 형성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우리금융은 지난해 완전 민영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20년 간 6차례에 걸쳐 수장이 교체됐다. 3년 주기로 수장이 조직을 흔들다보니 후속 인사에서 파벌 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

김양진 권광석 남기명 등 내부 출신 경쟁도 치열

우리금융 내부 출신으로는 김양진 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한일은행 출신), 권광석 전 우리은행 은행장(상업은행 출신), 남기명 우리은행 국내부문 부문장(상업은행 출신)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이들도 윤석열 정부 인사와 관련있거나 친정부 성향을 가진 인사들로 분류된다.

1956년생으로 셋 중 나이가 가장 많은 김양진 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은 서울대 출신으로 런던 법인장시절, 영국대사관 재경관으로 근무하던 임종룡 전 위원장과 인연이 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과도 연이 있다는 후문이다.

권 전 행장과 남 부문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금융인 지지선언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권 전 행장은 학성고 출신으로 복두규 윤석열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인사기획관과 동문이다. 복두규 기획관은 윤석열 검찰총장 시기에 대검찰청 사무국장(1급)을 지내며 대표적인 윤석열 사단으로 꼽힌다. 남 부문장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으로 불리는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나온 여의도고 출신으로, 장 의원과 선·후배 지간으로 알려져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금융 노동조합도 정부 낙하산 인사가 거론되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우리금융노동조합 협의회(우리금융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완전 민영화를 이룬 것이 불과 1년 전인데 최근 금융당국의 최고 수장이 '현명한 판단, 공정 투명한 CEO선임' 등을 운운하며 우리금융 CEO 선임에 직접 개입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금융 노조는 "우리금융의 1대 주주는 대다수 임직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우리사주조합인 만큼 회장 선임에 관치가 작용해선 안된다"며 "능력도 명분도 없는 친정권 인사가 내려온다면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 같은 금융기관은 공공성을 갖춰야 하므로 도덕적으로 적합하지 않은 인사라면 당국이 시정을 요구할 수는 있다"면서도 "뚜렷한 명분 없이 정부 인사가 취임한다면 경영자율성을 침해할 개연성이 있으며, 관치금융 또한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