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상인일기와 줄탁동시

박성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 2022shp@semas.or.kr
“하늘에 해가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하늘에 별이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장부엔 매상이 있어야 한다. (중략) 상인은 오직 팔아야만 하는 사람.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해야 하는 사람. 그러지 못하면 가게 문에다 묘지라고 써 붙여야 한다.”

1995년 대전시 경제국장으로 일하던 때 읽었던 ‘상인일기’다. 필자의 아버지 역시 상인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처절한 상인의 일기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혼자 보고 지나가기에는 아까워 인쇄해서 상인들에게 나눠주곤 했었다.3고(高)로 경제가 어렵다. 코로나19 여파도 여전하다. 이 와중에 유통 환경은 급변했다.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전통시장 상인들은 점포에서 고객과 직접 대면해 물건을 파는 것이 익숙하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온라인을 외면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정부와 공단에서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회복과 도약’을 첫 번째 국정과제로 삼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특히 온라인 판로 지원, 스마트상점 기술 보급, 디지털 전통시장 육성 등을 통해 상인들이 온라인에 익숙해지고, 나아가 스스로 활용하며 도약하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지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변화하려는 상인들의 마음이다.

우리나라 소상공인은 약 640만 명이다. 전체 가구 수가 2092만이니 대략 3분의 1 가구가 상인과 그의 가족인 셈이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숨이 막힐 정도로 푹푹 찌는 여름에도 상인들이 늘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가족 때문이다. 나는 힘들지만 내 자식만큼은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한국 사람 특유의 정신은 교육열로 이어졌고, 이 치열함이 우리나라를 국내총생산(GDP) 10위 안에 드는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밑거름이 됐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상인에게는 이러한 저력이 있다.‘줄탁동시(啄同時)’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일이 순조롭게 완성된다는 말이다. 정부와 공단의 맞춤형 지원에 상인들의 노력과 변화의 의지가 합쳐져 서로가 ‘줄탁동시’를 이룬다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민 경제는 활력을 되찾을 것이다.

필자는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힘들면 전통시장을 찾는다. 그곳에는 오늘도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하고자 치열한 삶을 사는 상인이 있다. 그들을 보면서 힘과 용기를 얻는다.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우리의 일상을 윤택하게 하는 상인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지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