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의 불편한 진실 [힘이 되는 부동산 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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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갭투자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가 수천억원에 육박하면서, 피해실태를 고발하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피해자들의 아픔을 잘 전달하고 있지만, 접근관점이 지나치게 피상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구도 하에 피해자를 두둔하고 가해자를 비난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다. 변호사로 이런 사기사건을 직접 경험해보면,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할 수 없는 이해관계인들 각자의 복잡한 계산법을 보고 느끼게 된다. 다양한 사기수법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예를 들어보자.
갭투자 전세사기를 기획하는 컨설팅업자가, 원룸, 다세대 건물 수십채를 지어 매매하는데 분양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분양업체에 접근한 후 솔깃한 제안을 한다. ‘시장여건상 분양을 바로 하기는 쉽지 않으니 분양 대신 일단 임대로 돌려 임대차계약이 완료된 후 다른 소유자로 변경하면 보증금반환채무에서 해방될 수 있어 결국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된다. 희망하는 한 채당 분양가는 2억원인데, 보증금 2억5천만원에 임대차계약할테니 5천만원을 컨설팅보수로 달라’는 제안을 분양업체가 수락하면서, 갭투자 전세사기가 시작된다.이런 사기구도에서 주범은 컨설팅업자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분양업체는 전혀 잘못이 없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분양가 2억원보다 훨씬 높은 2억5천만원에 임대차계약한 후 소유자변경하는 식으로 보증금 책임을 면하게 해주는 대가로 한 채당 5천만원이라는 엄청난 보수를 달라는 컨설팅업자의 수법은 비정상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명의대여료까지 지급하면서 구한 변경된 소유자에게 성실한 보증금반환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뻔하게 예상되는 상황에서, 분양가 2억원에 불과한 집이 경매들어가게 되면 임차인의 보증금피해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분양수익 앞에서 눈을 감게 된다. 문제가 생기면 컨설팅업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면서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발뺌하면 민‧형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해당 주택의 권리관계를 속인 것도 아니고, 보증금 많이 받는 것이 범죄가 아니라면, 집의 가치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들어온 임차인 잘못에 불과하지 임대인 잘못은 아니지 않나? 라는 식으로 자기합리화하면서 불법에 타협하게 된다.
그렇다면, 임대차계약 후 분양업체로부터 소유권을 이전받게 되는 명의대여자, 소위 “들러리 명의자” 책임은 어떨까? 부동산 소유권취득이라는 투자는 그에 따른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 정상적인데, 이들은 오히려 한 채당 수백만원의 대가, 즉 명의대여료까지 지급받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뭔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소유권을 넘겨 보증금반환책임을 회피해야하는 불량 깡통주택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식의 투자가 모두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이들 명의대여자들이 애초부터 보증금반환 할 능력이나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소유권이전으로 분양업체인 종전 임대인 책임이 면책되면 보증금반환이 사실상 곤란해진다는 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기 공모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받은 돈이 불과 몇 백만원에 불과하니 몰랐다고 하면 형사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책임질만한 재산도 전혀 없으니 민사적으로는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쉽게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임차인을 데려오는 중개업자 책임은 어떨까? 임대차계약에서 임차인 소개 업무에 비해 컨설팅업자로부터 제안받은 보수는 일반중개수수료 수준을 크게 넘어선다는 점에서, 일단 과다보수 자체가 위법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역 업소 특성상 대략적인 매매(분양)시세를 모를 수 없는 지위에 있어, 시세를 훌쩍 넘은 보증금을 지급하고 들어가게 되면 보증금반환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판단은 부동산 전문가로서 쉽게 가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마 이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보증금 안 주려는 마음은 아니겠지? 보증금반환이 안되더라도 임차인 한두명 소개한 정도인데, 설마 사기 공범으로 책임지지는 않을거야! 공부상에 명시된 것을 속인 것도 아니고, 빌라 시세는 애매할 수밖에 없으니 몰랐다고 하면 책임을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자기합리화로 범행에 편승하여 범죄수익을 나누는 것이다.심지어 직간접적인 임차인의 관여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 임차할 의향 없이 사기공범으로 들러리 임차인이 되어, 임대차보증금을 대출받는 범행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있고, 임대차계약과정에서 갭투자 전세사기를 의심하고서도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에 가입되면 나에게 아무런 손해가 없으니 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사기꾼들로부터 제공받는 이사비, 가전제품, 심지어는 보증보험료 등의 이익에 넘어가서 사기행각에 포섭되는 것이다. 사기의심이 들면 단호히 뿌리쳐야 하지만, 자기의 이익 앞에서 불의와 결탁해버린다. 몇 푼의 내 이익이 엄청난 공적손실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 보증금미지급 사고 피해의 절반 이상은 대출금융회사나 보증보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심지어 감정평가사들의 사기 가담도 의심되고 있다. 대출이나 보증보험가입과정에서 해당 임대차목적물의 시세파악을 위한 구비서류로 감정평가서를 요구하자, 감정평가사들과의 결탁이 늘어나고 있다. 시세를 고의로 부풀리는 고전적 방법 대신에, 미리 해당 목적물 인근 특정 물건의 시세를 의도적으로 높게 거래한 다음(시세를 띄운다고 함), 그 금액을 기준으로 해당 목적물을 높게 평가하는 방법으로, 면피할 방법까지 염두에 둔 보다 지능적 수법인 셈이다. 전문가 자격이 없는 부도덕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보증보험증권이 발행되면 별다른 검토 없이 임대차보증금대출을 시행하는 금융회사, 청년 세대 표를 의식해서 보증보험대상을 무작정 확대하고 있는 정치권, 보증금 대납은 국고로 보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보증보험 심사에 적극적이지 못한 보증보험 등 이해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겹쳐서, 지금과 같은 후진적이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사고로 이어진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게 되는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전세제도에 대해 두 번 놀라게 된다고 한다. 뭘 믿고 그런 엄청난 거액의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맡길 수 있는지 큰 걱정을 하다가, 막상 임대차만기에 그 돈을 공제없이 그대로 돌려받는다는 사실에 기뻐서 다시 놀라게 된다는 것이다.
전세제도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존재할 정도로 특이한데, 집값에 육박하는 거액의 보증금을 집주인에게 장기간 맡긴다는 그 자체가 법적으로 매우 위험하기 때문이다. 갭투자 전세사기는 이런 불완전하고 위험한 전세제도를 무비판적으로 계속 유지하는 가운데, 전세비중을 줄이지 못하고 오히려 보증금반환보증보험으로 더 공고히하는 허술한 우리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 구조 자체가 모럴해저드에 취약한 셈이다. 사고예방은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가능할 수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감정적이고 단순한 접근방법이 아니라, 우리 전세제도 자체의 개선을 절실하게 고민해야 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최광석 로티스 최광석 법률사무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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