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처벌만능주의의 함정

이관우 사회부장
사망자가 되레 늘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한 지 1년이 다 돼 가는 시점에서 받은 뜻밖의 통계다. 중대재해법은 심각한 중상자나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법인과는 별도로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엄벌’이 골자다. 근로자의 생명을 구한다는 절대가치가 부각되다 보니 토를 제대로 달지 못한 채 지난 1월 첫발을 뗐다.

법 시행 후 올 11월까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제조업과 건설사업장에서 사고로 236명(212건)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3% 늘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한 중대재해 전문 변호사는 이렇게 짚었다. “대표가 책임을 피할 형식적 요건 충족에 매달리다 보니 실질적 사고 예방의 디테일을 놓쳤을 가능성이 크다.” 면피 시스템을 확보하면 손을 놓는 일종의 방심이 화를 키웠다는 것이다. 위험 감소가 아니라 위험 증폭이다.

고강도 처벌이 잠복 위험 키워

업계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나름의 시스템을 갖췄다는데도 사고는 터져 나온다. 중대재해 사고를 겪은 한 기업체 대표는 “로펌 컨설팅비와 합의금으로 수십억원을 썼다”고 털어놨다. 중대재해법은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달라진다. 사고가 알려진 순간 사실상 ‘유죄’ 이미지가 덧씌워진다.

검찰도 생각이 많아졌다. 올해 발생한 212건의 사망 사고 가운데 기소는 6건에 불과하다. 섣불리 책임을 따졌다가 무죄가 나오면 역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당사자의 실수, 최고안전책임자(CSO)의 부재, 최고경영자(CEO)의 방임 등이 뒤섞인 재해의 실체를 쾌도난마처럼 분해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게 고민이다.

일벌백계는 유효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실에선 기대와 다른 결과를 자주 낳는다. 상습 음주운전을 가중 처벌하는 윤창호법도 그런 방향으로 흘렀다. 2019년 6월 법 시행 전후 음주운전 재범률이 오히려 늘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음주운전 사고자 중 재범률은 지난해 4.7%로 2018년 4.2%보다 0.5%포인트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형량을 강화했음에도 살인·강도·성폭력 등 강력범죄가 오히려 늘어났다는 대목은 여전한 연구 대상이다. 성범죄는 같은 기간 두 배로 증가했다.

재해 발생 원인 제거가 우선

근로자의 비극을 막자는 목표는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모두의 가치다. 잘못했다면 비례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선악 이분법에 정치 프레임까지 욱여넣은 처벌만능주의다. 중대재해는 무책임한 기업주에게서 비롯됐으니, 악을 벌하면 사고가 감소할 것이란 맹목적 확신이 이 씨앗에서 자란다.

음주 사고 재발을 줄이려 미국 유럽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음주 시동잠금장치(IID)’는 여러 엄벌 중심 제도에 시사점을 던진다. IID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운전자가 면허를 다시 딴 경우 일정 혈중알코올농도가 넘으면 차량 시동이 걸리지 않게 하는 장치다. 현상이 아닌 ‘근인(根因)’을 과학으로 직격하는 해법이다.

정부는 자율 예방을 내세운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으로 법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산업현장에선 벌써 “처벌 강도는 더 세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처벌만능주의에 대한 경계심도 커진다. 재해보다 더 큰 리스크가 고개를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