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순간 '퐁'…전자담배 열풍도 이긴 150년 고급 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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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라이터의 끝판왕' 듀퐁담배·라이터 업계에서는 2014~2015년을 ‘전자담배의 해’로 부른다. 전자담배 시장 규모가 빠른 속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터 판매가 급감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려와는 반대로 럭셔리 브랜드 듀퐁(에스.티. 듀퐁)의 국내 라이터 판매량은 꾸준히 늘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3년 동안 매출이 50% 늘었다.
금연족·전자담배족 늘어났어도
코로나 이후 3년 매출 50% 늘어
1억원대 최고가 라이터 내놓고
가방, 벨트 등 가죽 제품 눈 돌려
듀퐁은 지난 10년간 담배 시장 변화에 맞춰 살아남는 방법을 체득했다. 1억원대 최고가 라이터를 출시해 럭셔리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남성 지갑과 벨트, 서류 가방 등 다양한 가죽 제품 라인업으로 매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했다. 새로운 소비자도 꾸준히 유입되면서 20대 비율이 60% 정도까지 이르렀다.
○150년 역사 듀퐁
알랑 크레베 에스.티. 듀퐁 최고경영자(CEO·62·사진)는 15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시중 백화점과 성수동을 둘러봤다”며 “‘파리가 이래야 하는데’란 생각을 할 정도로 매번 다이내믹하고 참신한 모습에 놀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크레베 대표는 2007년 듀퐁 CEO를 맡았으며, 이번 방한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3년 만이다.듀퐁의 역사는 1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2년 시몽 티소 듀퐁이 창립한 회사로 사업 초기에는 여행용 캐리어와 가죽가방을 주로 만들었다. 1941년 들어서 ‘퐁’ 소리가 특징인 석유 라이터를 최초로 발명하면서 럭셔리 브랜드계에 입성했다.2014년 이후 몇 해간 듀퐁은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세계적으로 흡연율이 떨어지면서 라이터 판매량이 줄어든 것이다. 필립모리스(아이코스)와 KT&G(릴) 등 담배회사가 전자담배 시장을 키우는 것도 악재가 됐다.
하지만 크레베 대표는 대담하게 맞섰다. 그는 “시장 변화에 대응해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라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단기적인 판매량 감소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가용 라이터로
불행 중 다행으로 담배를 피우는 남성이 줄어들었지만, 매출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일반 담배시장 규모가 줄어든 대신 시가(cigar)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시가는 한 대에 6만~7만원을 호가하는 제품이 있을 정도로 고급 취미 시장이다. 듀퐁은 이에 걸맞은 고급 시가용 라이터를 만들어내면서 일반 라이터 시장 축소에 대응했다.남성용 가죽 벨트와 서류 가방 등 가죽 제품이 있기에 다양한 포트폴리오도 충분했다. 크레베 대표는 “루이비통, 몽블랑과 같은 럭셔리 브랜드처럼 가죽 제품 판매를 늘렸다”며 “최근 럭셔리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커지면서 제품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듀퐁은 라이터 브랜드이면서도 고가의 필기구와 가죽 제품 등을 판매하는 럭셔리 액세서리 브랜드로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20대가 찾는 브랜드 만들 것”
지난해 듀퐁은 한국 시장에서 희망을 봤다. 듀퐁 라이터를 떠올리면 40~50대 남성이 사용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국내 라이터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듀퐁 라이터 판매량의 60%가 20대일 정도로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크레베 대표는 “20·30대는 소비에서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특성이 있다”며 “듀퐁의 오래된 역사에 관심을 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라이터 구매 소비자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늘었다. 크레베 대표는 “최근 집에서 향초를 피우는 시장이 확대됐는데, 향초에 불을 붙일 때 듀퐁과 같은 고가 라이터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듀퐁은 몇년 전에 여성들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7㎜ 두께의 초슬림 라이터를 내놓기도 했다.듀퐁은 고가 라이터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가방 등 가죽 제품 부분을 강화해나갈 예정이다. 크레베 대표는 “듀퐁의 연간 라이터 판매량은 5만 개 정도”라며 “판매량보다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럭셔리사업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