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시원히 할 말 했다" 156분 생중계, 尹은 대만족이라는데… [여기는 대통령실]

좌동욱 반장의 대통령실 현장 돋보기

두차례 尹 대통령 주재 회의 생중계 ‘득실’ 짚어보니
우려했던 우발 사고 없어…尹대통령 “속시원하게 할말 했다”
생방송 부담에 이해관계자 못불러…야당은 “자화자찬” 비판
정책 대안·방향도 없어…차라리 기자회견·도어스테핑이 낫다
“대통령께서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털어놔서,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가 끝난 뒤 “기분이 좋아 보였다”고 복수의 대통령실 참모들이 전했다. 행사에 초청된 국민들도 회의를 마친 후 윤 대통령의 즐거워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생중계로 2시간 36분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민감하고 복잡한 현안에 대해 거침없이 소신과 철학을 쏟아냈다.당초 계획된 방송 시간을 약 한 시간이나 넘겼지만, 대선 때처럼 구설수에 오를 만한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의 화술이 또 업그레이드됐다”는 아부 섞인 평가도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일선 기자들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그동안 수많은 도어스테핑을 거치면서 윤 대통령의 발언을 직접 지켜본 탓도 있다. 특히 당초 관심을 모았던 연금, 노동, 교육 등 3대 개혁 과제에 대해선 구체적인 대안이나 새로운 정책 방향을 볼 수 없었다. 민생 분야에선 “다주택자 부동산 대출·세금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왔지만, 다음 주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에서 발표될 내용을 며칠 먼저 알렸다는 의미 정도에 그친다. 개별 장관들이 풀기 어려운 핵심 국정과제를 대통령이 직접 점검하고 풀겠다는 이번 행사의 취지와 크게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 3대 개혁의 당사자인 공무원(연금 개혁), 노조원(노동 개혁), 교육자(교육 개혁)들이 이번 행사에서 죄다 빠졌다. 기존 제도를 바꾸려면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는 이들 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면 어떤 조그마한 개혁도 제대로 밀고 나갈 수 없다. 야당 인사도 이번 행사에 초청받지 못했다. 그러면서 여당의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에겐 생중계 도중 따로 발언 기회까지 줬다. 3대 구조 개혁은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동의가 없으면 한걸음도 나가기 어렵다는 사실을 그 똑똑한 대통령실 참모들이 모를 리가 없다. 회의가 끝난 후 민주당에서 “지난 정부 탓으로 시작해 자화자찬으로 끝났다"(박성준 대변인)는 반응이 나온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여과 없이 국민들에게 전달하겠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 “인기가 없더라고 회피하지 않겠다” “개혁은 선택이 아닌 필수” 등 개혁을 향한 윤 대통령의 의지도 잘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를 두 시간 넘게 12개 방송사들이 생중계로 보도해야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 든다. 시청률도 기대에 못 미친다.

내부 장차관들이 하는 회의를 생중계로 국민들에게 보여주겠다는 발상은 부작용이 많이 따른다. 국민들을 초청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단계의 사전 검열과 검증을 받아야 한다. 전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유다.
국민께 알리고 싶은 일이 있으면 기자회견을 열면 된다. 어느 한 진영이 아닌, 모든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사항을 언론들이 국민을 대신해 친절하고 세세하게 물어본다. 특정 주제나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직접 소통’도 생각해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양극화 해법’을 놓고 대통령과 국민들이 토론회를 연 게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이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도어스테핑’도 나쁘지 않은 대안이다.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조그만 손질만 하면 당장 재개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이런 모든 대안을 제쳐 놓고 정부의 내부 회의를 굳이 생중계로 보도할 이유가 있는지 대통령실 참모들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