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소매업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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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5060도 온라인 쇼핑올해도 자영업자와 중소상인에게 힘든 한 해였다. 이유는 ‘소매업의 종말(Retail Apocalypse)’ 현상 때문이다. 디지털 경제가 발전하고 소비가 증가하는 가운데 전통 소매업이 쇠퇴하는 현상이다.
소매업 '즐거운 공간' 재편집을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기간 중 비대면 쇼핑이 힘을 받으면서 이전에는 e커머스를 이용하지 않은 50~60대 베이비부머들이 온라인 시장에 대폭 유입됐다. 반대로 오프라인 매장 방문객은 절대 수가 줄어들고 있다. 한국의 소매업 종말 현상은 지방 도시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그리고 지방 주요 도시 구도심 지하상가와 상권이 최근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다. 100% 공실로 문을 닫은 청주 대현지하상가는 다소 충격적인 사례다.한국 소매산업은 내년에도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가진 많은 전통 소매업체가 쇠퇴하고 소수의 e커머스 업체만 성장하는 양극화 현상은 내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엔데믹으로 인한 보복소비 증가와 리오프닝으로 2023년 e커머스 성장률은 이전보다 대폭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오프라인 공간이 주는 ‘재미’와 온라인 효율성이 가져다주는 ‘가성비’의 본격적인 싸움은 내년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소매업의 경쟁 구도가 ‘사람’과 ‘알고리즘’의 대결 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도 한국 소매시장 전망과 시사점을 도출해 본다.
첫째, 한국의 대표 소매업체로 등극한 쿠팡과 네이버 등 온라인 쇼핑이 성장을 주도할 것이다. 내년에는 엔데믹 효과로 두 자릿수의 고도 성장은 힘들어 보인다. 온라인 쇼핑에 이어 백화점과 편의점도 플러스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대형마트와 슈퍼마켓, 전통시장은 플러스 성장이 힘들 것으로 예상한다. 불안한 거시경제에 따른 경기 쇠퇴와 고물가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어 사양 업태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대형마트 일요 의무 휴업을 완화하고 전통시장 관광지화를 더욱 촉진할 필요가 있다.
둘째, 소매산업은 아마존과 쿠팡 같은 e커머스 플랫폼의 급격한 성장으로 리테일 테크 산업으로 진화했다. 전통적 의미의 소매업과는 거리가 먼 알고리즘과 데이터에 기반한 물류산업으로 산업의 정체성이 바뀌어 버린 것이다. 기존 방식의 소매업은 누구의 잘못으로 매출 정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세상의 변화에 쇼핑의 미래가 먼저 와버린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적 소매기업 롯데쇼핑과 이마트는 이 같은 변화에 대한 응전이 미약해 지난 8년간 주식 가치가 각각 75%, 50%가량 감소했다. 미국의 월마트와 타깃처럼 디지털 전환(DX)에 성공해야만 기존 기업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
셋째, 기존 전통적 소매업의 존재 가치와 정체성을 재편집할 필요가 있다. 데이터산업으로 변한 e커머스 플랫폼 기업에 대항해 전통시장과 지하상가는 ‘힐링과 테라피’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해야 한다. 다행히 젠지(Generation Z)라고 불리는 젊은 세대는 오프라인 쇼핑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 도시인들은 수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리테일 테라피(therapy)를 제공할 수 있다면 테크 기업과도 싸울 수 있다. 행복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인식될 수 있다면 지속 성장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