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서시,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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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서시 나희덕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도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태헌의 한역]
序詩(서시)到今未熱一人胸(도금미열일인흉)
蒙蒙煙氣加又加(몽몽연기가우가)
吾人心地冗火兮(오인심지용화혜)
盡熄而滅尙遠耶(진식이멸상원야)
[주석]
· 序詩(서시) : 책의 첫머리에 서문 대신에 쓴 시(詩)나 장시(長詩)에서 서문 비슷하게 첫머리에 별도의 장(章)을 마련하여 쓴 시(詩)를 가리킨다.
· 到今(도금) : 지금까지, 지금껏. / 未熱(미열) : 아직 ~을 뜨겁게 하지 못하다, 아직 ~을 지피지 못하다. / 一人胸(일인흉) : 한 사람의 가슴.
· 蒙蒙(몽몽) : 무성하다. 무성한 모양. / 煙氣(연기) : 연기. / 加又加(가우가) : 더하고 또 더하다, 더해지고 또 더해지다, 원시의 “(연기만) 내고 있는”을 약간 달리 표현한 것이다.
· 吾人(오인) : 나. / 心地(심지) : 속마음, 마음. / 冗火(용화) : 군불의 한역어(漢譯語)로 역자가 임의로 만들어본 한자어이다. 시에 쓰인 ‘군불’이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군불과는 다르기 때문에, ‘쓸데없는 불’을 의미하는 ‘冗火’로 조어(造語)하였던 것이다. / 兮(혜) : ~여! ‘兮’는 호격(呼格) 조사이다.
· 盡熄而滅(진식이멸) : (불이) 다 꺼져서 사라지다. 원시에 사용된 어근 ‘꺼지다’를 역자가 글자를 늘려 옮긴 표현이다. / 尙(상) : 오히려, 아직. / 遠(원) :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멀다. / 耶(야) : ~하느냐, 이냐? ‘耶’는 의문 어기사(語氣詞)이다.
[한역의 직역]
서시지금껏 한 사람의 가슴도 못 지피고
무성한 연기만 더하고 또 더하나니
내 마음의 군불이여
다 꺼져 사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한역노트]
역자는, 나희덕 시인의 시에 대한 태도 내지 마음가짐을 적은 이 시를 읽자마자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에 출판했던 역자의 자작 한시집(漢詩集)에 수록한 서시(序詩)가 떠올랐다. 시에 동원된 소품과 말하는 방식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나희덕 시인의 이 시가 역자의 서시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점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던 기억이 벌써 몇 해 전이었는데, 최근에 어떤 글을 쓰다가 불현듯 이 시가 떠올라 다시 꺼내 보고는, 내친 김에 마침내 한역까지 해보게 되었다. 역자가 확인해본 결과, 나희덕 시인의 서시는 역자의 서시보다 앞서 지어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역자가 서시를 지을 그 임시에 역자는 나희덕 시인의 이 서시를 결코 본 적이 없다. 우선 역자의 서시를 살펴보기로 한다.
詩手何期得富貴(시수하기득부귀)
驚人妙句思而思(경인묘구사이사)
乾坤景似西施麗(건곤경사서시려)
軸滿仳倠羞學詩(축만비휴수학시)시를 짓는 이가 어찌 부귀 얻기를 기약하랴!
사람 놀래줄 묘구(妙句)를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
천지의 경물은 서시처럼 아름다운데
시축(詩軸)엔 비휴만 가득하여 시 배운 게 부끄럽구나.
역자의 이 시까지 보고나서, “두 시(詩)가 닮긴 뭐가 닮아?”라고 핀잔할 독자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역자의 얘기를 다 듣고 나면 아마도 대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술다리≫에 수록된 역자의 이 서시는 원제가 “代序(대서)”, 곧 “서문을 대신하여”이다. 그리고 시에 나오는 어려운 한자인 “비휴(仳倠)”는 옛날 추녀의 이름이다. 또 “시축(詩軸)”은 시를 적는 두루마리를 가리킨다. 그럼 이제 역자가 싱크로율(synchro率)이 놀라울 정도라고 생각했던 이유를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나희덕 시인이 생각한, 가슴에 불을 지피는 시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시이다. 역자가 서시에서 언급한 “사람 놀래줄 묘구(妙句)”가 바로 그런 시에 해당된다. 시인이 지금껏 한 사람의 가슴도 지피지 못하고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다고 한 것은, 당연히 겸사로 보이지만 자신이 지은 시가 누구도 감동시키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가혹한 자가(自家) 비평이다.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군불”은 곧,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했으므로 아름답게 여겨지지 않는 시라는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비유는, 역자가 서시에서 “시축(詩軸)엔 비휴만 가득하다”고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시인에게 있어 군불은, 제대로 타지는 않고 연기만 무성하게 내는 군더더기와 같은 불을 뜻한다. 그리고 시인이 얘기한 마음의 군불은 당연히 마음에서 일어나는 시상(詩想)에 대한 비유이다. 표면적으로는 그 마음의 군불이 꺼지기를 바라고 있는 듯하지만, 기실은 그 시상이라는 군불은 시인 스스로가 끌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시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을 은연중에 에둘러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역자가 서시에서 “시 배운 게 부끄럽다”고 한 것이 이와 맞닿아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배운 것이 시 뿐이어서, 그림이나 음악 같은 것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표현할 수가 없으니, 부끄럽지만 시를 붙들고 가는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시를 못났다고 여기면서도 시를 놓지 않겠다는 신념을 내보인 것이, 역자가 보기에는 매우 닮아 있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해준다고 지핀 불이 연기만 무성하게 하여 오히려 눈만 맵게 만들고 만 것과, 서시(西施) 같은 미녀를 시로 그리겠다고 덤볐다가 비휴 같은 추녀를 그리고 만 것이, 역자 생각에는 싱크로율이 거의 100퍼센트로 여겨지는데, 시인이나 독자들께서 여기에 얼마나 동의해줄 지는 알지 못하겠다.
지금은 본래적 의미의 군불이 필요한 계절이다. 밥을 짓거나 여물을 끓이는 것과 같은 뚜렷한 목적 없이 오로지 방을 덥힐 목적으로 아궁이에 때는 불을 의미하는 이 군불은, 연탄도 기름도 전기도 없거나 비싸서 거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던 그 시절에는, 매우 소중하고 요긴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몸보다 마음이 더 추운 세상이다. 이 시린 마음의 구들장에 군불을 지펴줄 사람은 누구일까? 역자는 지금도 시린 마음에 군불을 지펴줄 벗이 그리울 때면 술로 벗을 삼는다. 하여 원래는 가을밤에 지은 시이지만 겨울밤에 지은 시로 슬쩍 고쳐 그 허허로움을 여기에 적어둔다.
蕭蕭冬夜(소소동야)
蕭蕭冬夜所思何(소소동야소사하)
胸裏唯存君與酒(흉리유존군여주)
君在遐方酒在旁(군재하방주재방)
今宵又請酒爲友(금소우청주위우)
쓸쓸한 겨울밤에
쓸쓸한 겨울밤에 그리운 게 무언가?
가슴속에는 오직 그대와 술 생각뿐.
그대는 먼 데 있고 술은 곁에 있어
오늘밤 또한 술을 청해 벗을 삼노라.
연 구분 없이 5행으로 된 원시를 역자는 칠언 4구의 고시로 한역하였으며, 한역시의 압운자는 ‘加(가)’와 ‘耶(야)’이다.
2022. 12. 20.<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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