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 칼럼] 민생, 어쩌다 폴란드 망명정부 지폐 신세 됐나

"첫째도, 마지막도 민생"이라지만
쏟아내는 정책·주장은 反서민

이념형 정책들 부작용 알면서도
갈라치기 전략 희생양으로 삼아
국민 명령, 전체주의 냄새 '물씬'

홍영식 논설위원
잘 알려져 있듯, 나치는 유대인 강제수용소 감금을 ‘재정착’으로, 학살을 ‘최종 해결책’ ‘안락사 제공’으로 포장했다. 언어 왜곡의 대표적 사례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이 아무 죄의식 없이 악행을 저지른 것도 언어 왜곡에 따른 자의식 마비 때문이었다. 정치 전략가들은 이런 선전 선동 문구를 고안해내느라 온 힘을 쏟는다. 정치 구호는 단번에 귀에 쏙 들어올 정도로 단순해야 하며, 이성적 합리가 끼어들 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현실을 무감각,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감성을 자극해야 한다. “선동은 한 줄로 가능하지만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가 필요하다”는 나치 앞잡이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말은 선동의 바이블로 통한다.

‘민생’은 우리 정치판의 영원한 화두다. 국민의 생활, 생계를 챙긴다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이 말 자체가 50점은 따고 들어가게 돼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요즘 부쩍 민생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일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당선 연설에서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마지막도 민생”이라며 ‘민생경제위기대책특위’ 설치를 1호 지시로 내렸다. 심지어 측근 구속 메시지도 “검찰 칼춤을 막아내고, 민생을 지키는 야당 역할에 충실하겠다”였다. 그러나 ‘억강부약 대동세상’을 외치며 쏟아내는 이념형 법안과 주장들을 한꺼풀만 걷어내면 모순덩어리라는 사실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 대표는 급전이 필요한 영세기업과 저신용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법정 최고 이자율 초과 계약 무효법(대부업법 및 금융이용자 보호법)’을 약자 보호 명목으로 발의했다. 중소기업 91%가 활용하고 통상임금보다 1.5배를 받을 수 있어 다수 근로자가 원하는 ‘주 8시간 추가 연장 근로제’를 ‘노동 약자’를 위해 없애겠다고 한다. 중소기업을 위한다면서도 가업승계 공제 확대는 반대한다.이 대표가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반도체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방법을 최대한 동원하겠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첨단전략산업 세액 공제에 발목을 잡았다. 국민 경제와 민생에 큰 충격을 줄 한국전력 회사채 발행한도 확대 법안 표결에 이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기권해버렸다. 민생과 서민은 말뿐 지독한 반(反)민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법안 추진을 ‘국민 명령’이라고 한다. 전체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런데 민주당이 법인세 대상이 개인이 아니라 법인이라는 사실을 몰라서 ‘초부자, 슈퍼리치 감세’ 딱지를 붙인 걸까. 기초연금 인상, 양곡관리법, 노란봉투법 부작용을 모르고 강행하는 걸까. 주식 투자 수익 5000만원 초과분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으로 개미투자자들이 골탕을 먹을 걸 모르고 유예에 반대하는 것일까. 거대 야당이 그럴 정도로 단세포적이라고 믿고 싶지 않다. 민생과 서민을 방패막이 삼은 갈라치기 전략에 다름 아니다. 대기업 대 중소기업, 부자 대 서민이라는 구도를 형성해 다수의 표를 얻으려는 노림수다. 민생을 이념과 언어 왜곡의 덫에 몰아넣은 꼴이다. “정치인은 주인이 되기 위해 머슴행세를 한다”는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의힘이라고 다를까. 지난 정기국회 중점 처리 법안 선정 키워드로 ‘민생’과 ‘약자 동행’을 내세웠다. 납품단가연동제, 출산·보육·아동수당 확대 등이 뼈대였다. 정책위원회 의장은 “가장 중요한 건 민생법안”이라며 “국민 모두에게 해당하고, 꼭 해결해야 할 법안을 선정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초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정기국회 핵심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법인세율 인하 등 감세법안도 중점 처리법안에 당연히 포함시켜야 했다. 세 감면을 받으면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만들어져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데도 막판 ‘민생법안’에서 빼버렸다. 이러니 감세법안이 ‘초부자 감세’라는 야당의 거짓 주장에 대응할 집권당의 정교한 전략이 있을 리 없고, 끝까지 질질 끌려다니는 것이다. 소수 여당으로서 결기를 보여줘도 모자랄 판에 한전법 표결에 절반 가까이 불참했다. 민생은 어디 가고 ‘웰빙 체질’만 보인다.

이럴 거면 여든, 야든 민생과 국민을 함부로 팔지 말라. 민생과 국민, 이 소중한 단어들이 어쩌다 왜곡돼 정치 선동 수단으로 전락한 채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처럼 거리를 나뒹구는 신세가 돼버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