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신약 실패 '반성문' 쓰는 신라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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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구진과 펙사벡 3상 실패 분석신라젠이 항암 신약 후보물질 ‘펙사벡’의 임상 3상 실패 원인을 분석한 논문 발간에 참여한다. 실패로 끝난 간암 환자 대상 글로벌 임상 과정을 되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다. 불리한 임상 결과를 덮어버리거나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데 익숙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 분위기를 감안하면 신선한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선 이례적…"회사 자산될 것"
19일 바이오업계에 따르면 가산 아부알파 미국 메모리얼슬로언케터링 암센터 교수는 2015년부터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던 펙사벡 임상 3상 실패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아부알파 교수는 펙사벡 임상 3상을 주도한 인물로, 간암 치료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로 꼽힌다. 김재경 신라젠 대표는 “아부알파 교수의 논문 작업에 임상 3상 데이터 등 회사가 가진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며 협조하고 있다”고 했다.신라젠의 바이러스 기반 항암 치료제인 펙사벡은 국내 바이오업계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신약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이다. 2015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글로벌 임상 3상을 시작했지만 효능 입증에 실패하며 2019년 조기 종료됐다. 신라젠 주가가 급락하며 개인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 당시 경영진의 배임·횡령 사건까지 터지며 상장폐지 위기를 겪었다. 이는 국내 바이오업계 신뢰도 추락의 상징적 사건이 됐다. 신라젠은 2년5개월 만인 지난 10월 거래가 재개됐다.
신라젠 내부적으로 아부알파 교수의 논문 작업에 협조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패한 임상을 다시 들춰내는 게 회사 이미지에 부정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신라젠은 펙사벡 물질 자체의 효능을 떠나 당시 임상 설계와 환자 관리 등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실제 임상에 참여한 일부 환자들이 시험 약물 이외의 치료제를 투여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신라젠 관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신약 개발 과정을 보면 실패도 자산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신라젠은 펙사벡의 업그레이드 버전 후보물질인 ‘SJ-600 시리즈’와 스위스 제약사 로슈에서 독립한 바이오텍 바실리아로부터 항암제를 기술도입해 임상 1상을 준비하고 있다.투자업계 관계자는 “해외에선 실패한 임상 데이터도 숨김없이 공개하고 분석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국내에도 이런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