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의 땅'서 캐낸 기적…여의도 30배 면적에 묻힌 '하얀 석유' [르포]

아르헨티나 ‘리튬 삼각지대’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塩湖)를 가다
국내에 첫 공개…‘불모의 땅’을 ‘축복의 땅’으로 탈바꿈시킨 리튬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살타주(州). 주도인 살타시에서도 370㎞ 가량 떨어진 해발 4000m 고지대엔 ‘옴브레 무에르토’라는 염호(塩湖)가 있다. 스페인어로 ‘죽은 남자’를 뜻하는 이 염호는 그동안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이었다. 지금은 전 세계 각국이 주목하는 ‘축복의 땅’으로 탈바꿈했다. 포스코그룹이 2018년 이 염호를 인수한 이후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이자 ‘하얀 석유’로 불리는 다량의 리튬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찾은 옴브레 무에르토는 크기를 한눈에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했다. 이 염호에서 포스코그룹이 구입한 광권 면적은 2만5500헥타르(㏊)로, 여의도 행정구역 면적(840㏊)의 30배에 달한다. 해발 4000m 안데스산맥 기슭 고지대에 자리잡은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의 첫 인상은 소금호수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였다. 살타시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30분을 이동해 도착한 이 염호엔 붉은 황토빛의 메마른 땅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국내에 잘 알려진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처럼 하얀 소금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통상 염호는 수백m 지하에 리튬을 함유한 염수가 매장돼 있다. 오재훈 포스코아르헨티나 DP생산기술실장은 “지하 600m 깊이의 관정을 뚫은 뒤 땅 속에 고여있는 염수를 뽑아올려 증발 과정을 거쳐 리튬을 추출하고 있다”며 “석유를 뽑아내는 것처럼 얼마나 많은 관정을 뚫고 얼마나 깊게 파내려 가느냐에 따라 더 많은 리튬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곳에 매장된 리튬은 1350만t으로 추정된다. 양극재에 들어가는 수산화리튬을 연 10만t씩 30년 이상 생산할 수 있다. 전기차를 연간 250만대씩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포스코그룹을 비롯한 글로벌 2차전지 소재기업들은 리튬 확보에 올인하고 있다. 포스코그룹은 2025년까지 아르헨티나 염호 리튬 사업에 19억2000만달러(약 2조5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어 2030년까지 비슷한 규모의 추가 투자도 단행한다.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생산원가의 절반을 차지하는 양극재 핵심 광물이다. 리튬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배터리 전쟁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다. 지난 19일 기준 ㎏당 가격은 519.5위안(약 9만7000원)으로, 1년 전(175.5위안) 대비 세 배 급등했다.

햇볕에 말려 고농도 리튬 추출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는 볼리비아와 칠레와 인접한 ‘리튬 삼각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리튬 삼각지대엔 전 세계 리튬의 65% 가량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엔 1L당 평균 921㎎의 리튬이 함유돼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농도가 높은 염호다. 호주 등 광산에서 채굴되는 리튬정광의 리튬 함유량은 염호보다 훨씬 높다. 하지만 암석에서 리튬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오염이 많이 발생하고 원가도 높아 가격 경쟁력 측면에선 염수 리튬이 유리하다는 것이 포스코그룹의 설명이다.

염호 곳곳엔 푸른 물이 찰랑거리는 폰드(pond·인공 연못)가 조성돼 있었다. 땅 속에 고여있던 염수를 뽑아 올린 후 햇볕에 말려 증발시키는 이른바 염전이다. 폰드 한 곳의 둘레만 4㎞가 넘는다. 염전이 물을 증발시켜 소금 결정을 얻어내는 것과 정반대로 폰드에선 소금 결정은 버리고 고농도 리튬이 함유된 염수를 얻는다.
폰드는 총 4단계로 나뉜다. 1단계 폰드는 땅 속에서 뽑아낸 염수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소금 결정과 마그네슘과 황산 등 불순물을 제거하면서 리튬 농도가 높아진다. 마지막 4단계에서 1L당 평균 4000㎎의 리튬 농도를 확보하면 이를 토대로 인산리튬(LP)으로 만든다. 오재훈 포스코아르헨티나 DP생산기술실장은 “폰드에서 고농도 리튬을 단계적으로 추출하는 기술은 포스코그룹이 독자 개발했다”며 “당초 1년이 넘는 리튬 생산기간을 3개월로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오재훈 포스코아르헨티나 DP생산기술실장이 염호 폰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경민 기자
이렇게 만들어진 인산리튬은 저지대인 살타시 공장으로 옮겨져 양극재에 활용되는 수산화리튬으로 제조된다. 수산화리튬은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주력하는 NCM(니켈 코발트 망간) 삼원계 배터리에 쓰인다. 인산리튬을 만드는 공정을 상(上)공정, 인산리튬을 수산화리튬이나 탄산리튬으로 만드는 공정이 하(下)공정이다.
인산리튬

실제 매장량은 예상치 6배

포스코그룹이 리튬을 차세대 성장동력을 점찍은 건 2010년 초반이다. 볼리비아와 칠레에서 사업을 추진했지만 경제성이 낮다는 판단에 따라 눈을 돌린 곳이 아르헨티나였다. 이사회로부터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사업 투자계획을 승인받은 건 2018년 8월. 당시만 하더라도 회사 안팎에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리튬 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100% 실패할 것이라는 비아냥도 들어야만 했다.
포스코그룹이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 조성 중인 1단계 리튬공장. 포스코그룹 제공
하지만 최정우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리튬 사업을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믿음은 적중했다. 염호 인수 후 글로벌 염수리튬 전문 컨설팅 업체가 매장량을 검증한 결과 리튬 매장량은 인수 당시 추산했던 220만t의 6배인 1350만t(탄산리튬 기준)까지 늘어났다. 100~200m 가량 깊이만 뚫었던 다른 업체들과 달리 포스코그룹은 관정 수도 대폭 확대하고 600m 깊이까지 파들어 갔다.

포스코그룹은 우선 2024년 상반기 준공을 목표로 8억3000만 달러를 들여 1단계 리튬 공장을 건설 중이다. 수산화리튬을 연산 2만5000t 생산할 수 있다. 이달부터는 연산 2만5000t의 수산화리튬 생산을 위한 2단계 리튬 공장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2단계 사업비는 10억9000만달러다. 포스코그룹은 1·2단계에 이어 2030년까지 3·4단계 증설 작업을 통해 아르헨티나 리튬 생산량을 연산 10만t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염수 리튬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 생산량이다.

해발 4000m서 고산병 악조건 딛고 근무

“절대로 뛰면 안 됩니다. 산소가 금방 희박해져서 고산병 증상을 겪게 됩니다.”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 도착한 후 기자가 뜀박질로 발걸음을 재촉하자 포스코아르헨티나법인 관계자들은 이렇게 소리쳤다. 이들의 말은 곧바로 현실이 됐다. 시간이 지나자 산소가 희박해지면서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압이 상승하고 두통이 찾아왔다. 고산병약을 먹고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후에야 간신히 진정이 됐다.
해발 4000m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서 근무하는 포스코아르헨티나 임직원들은 100여명 가량이다. 1단계 리튬공장 건설공사를 하는 포스코건설 인력 등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다. 사무실에선 위성과의 연결을 통해 TV 시청뿐 아니라 인터넷 연결도 가능하다. 숙식 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파견된 주재원들은 염호 근무기간이 일주일을 넘지 않는다. 일주일을 염호에서 근무한 후 일주일은 저지대인 살타시에서 일하는 방식이다. 오재훈 포스코아르헨티나 DP생산기술실장은 “고지대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이 일주일 넘게 염호에서 근무하면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염호 근무 전날엔 음주는 일절 금지돼 있다. 고지대 환경에 익숙한 현지인들은 14일 간격으로 염호에서 근무한다.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와 살타시를 운항하는 경비행기에 직원들이 탑승하고 있다. 강경민 기자
염호 입구엔 1㎞ 길이의 경비행기 활주로도 마련돼 있다. 오 실장은 “현지 항공업체와 전속계약을 맺고 일주일에 이틀씩 염호와 살타시를 오가는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활주로가 마련되기 이전에는 저지대에서 8시간을 걸려 트럭으로 이동해야만 했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경비행기이기 때문에 무거운 화물을 실을 수 없어 지금도 건설 자재 및 식료품 등은 트럭을 통해 실어나른다.

살타(아르헨티나)=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