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광로가 꺼져도 괜찮아…포스코의 배터리 소재 '잭팟' [안재광의 대기만성's]

제철보국 이어 배터리보국 나선 포스코
아르헨티나 염호 등 배터리 광물 확보
양극재 음극재 등 배터로 소재 사업서 성과
포스코케미칼, 포스코 내 주력계열사로 성장
중국의 배터리 굴기에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
▶안재광 기자

포스코 홈페이지 메인화면인데요,
배경은 아르헨티나의 한 소금호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입니다.
기업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보통 뭐가 나오나요.
회사를 대표하는 이미지,
혹은 주력 상품이 나오죠.
한국경제신문에선
그날의 주요 뉴스가 나오고,
현대자동차에는 그랜저 같은
자동차가 등장하네요.
메인화면은 기업의 정체성과 같죠.
그럼 포스코 홈페이지에는
당연히 제철소나 철강 제품이
나와야 할텐데. 생뚱맞게 염호가,
그것도 한국도 아닌 아르헨티나의
염호가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포스코는 왜 아르헨티나 염호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규정했는지.
이번 주제는 제철보국 넘어
배터리보국 나선 포스코입니다.
포스코는 1968년 4월에 설립이 됐습니다.
원래 이름은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
포항제철이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포항에서 출발했고
제철, 그러니까 철을 생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포철은 일제 식민시대 피해에 따른 배상
즉,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 청구자금으로
세워진 기업입니다.
박태준 초대 회장은
조상의 혈세이며 피의 대가로 설립됐으니
사업을 반드시 성공시켜
나라에 보답하자는 의미로
제철보국을 모토로 삼았습니다.
포항 제철소 앞바다가 영일만인데요,
박태준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사업이 잘 안되면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다 빠져 죽자며
우향우 정신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비장하죠.
우향우 정신 덕분인지,
포스코는 이후에 빠르게 성장해서
2000년대 초반 조강,
그러니까 쇳물 생산능력으로
세계 1위까지도 했습니다.
이후 중국·인도가 급부상해서
현재는 순위가 내려가 6위 정도 합니다만,
엄청난 성과를 낸 것은 틀림없습니다.
포스코의 요즘 고민은 그런데,
철만 만들어선 회사를 키우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포스코가 철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팔 데가 없거든요.
세계 철강 생산량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수요는 더디게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철강 산업은 2010년 이후
공급 과잉에 시달리고 있어요.
중국·인도 러시아가
경쟁적으로 제철소를 짓고
생산량을 늘려서 그렇습니다.
특히 중국의 철강 설비 투자는
최근 5년간 급증했는데요,
연평균 50%씩 늘었습니다.
중국이 자국에서 철강 수요가
급격히 느니까 철강소를 무식하게
많이 지어서 그런데요.
중국을 제외하고 세계 철강 수요는
제자리걸음, 혹은 오히려 줄고 있습니다.
주요 선진국의 철강 제품 수요는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습니다.
영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등은
2000년대 이전에 일찌감치
피크에 이르렀고요.
미국과 대만 이탈리아 캐나다 독일
스페인 등도 수요가 줄고 있습니다.
한국은 2008년이 피크였어요.
그나마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같은 신흥국이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어서
버티고는 있는데요.
이것도 얼마 안 갈 것 같습니다.
설령, 철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 해도
지금처럼 철을 생산하면
더 이상 사업하기 어렵습니다.
ESG 경영 트렌드 때문인데요.
ESG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약자죠.
이 가운데 환경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환경에 해가 되면 소비자는 제품 안 사주고,
은행은 돈 안 빌려주고,
기관투자자는 투자를 안 합니다.
그런데 철강 산업은 기후 악당이라고
불릴 만큼 환경을 대단히 파괴합니다.
제철소에서 배기가스가 엄청나게 나옵니다.
철을 뽑아내려면 철광석과 석탄을 고로에 넣고
1500도 이상 고온으로 녹이는데요,
이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합니다.
철 1톤을 생산하는 데 이산화탄소 1.83톤이
배출된다고 해요.
철보다 이산화탄소가 더 나오죠.
모든 산업을 통틀어
철강 산업이 가장 많은 배기가스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 비중이 24%나 됩니다.
포스코도 당연히 이걸 알았습니다.
일찍부터 대비도 했죠.
포스코는 1999년 광양 제철소에
다섯번째 고로를 완공한 뒤에
국내에선 더 이상 용광로를 늘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후 제철 사업은 사실상 유지만 하고
큰 투자는 잘 안 해요.
만들어서 팔 데는 점점 없고,
만들 땐 욕을 무진장 먹으니까
확장하는 게 힘들었던 겁니다.
그래서 철강을 대체할 무언가를
계속 찾았고, 그래서 찾았습니다.
바로 배터리 소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배터리는
주로 리튬이온 배터리,
그러니까 리튬이 양극과 음극을
오가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전지를
뜻합니다. 2차 전지라고도 하죠.
포스코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만들 때 필요한 양극재 시장을
공략했습니다. 양극재가 배터리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인데다
가격도 소재 중에 가장 비싸거든요.
제철과 배터리 소재는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사업 같은데
비슷한 부분도 많습니다.
우선 한국의 주력 산업을 뒷받침합니다.
철강은 한국이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한
선박 자동차 건설 기계 전자
같은 산업을 뒷받침했죠.
이들 산업이 수출을 무진장해서
1980년대 이후에 지금까지 40여년을
한국을 먹여 살렸습니다.
배터리 소재는 앞으로 그럴 가능성이 높죠.
현재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최고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생산 순위로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이
세계 2위, SK온이 5위, 삼성SDI가 6위입니다.
배터리는 전기차의 보급 때문에
수요가 당분간 폭발적으로 늘 수밖에 없죠.
앞으로 수출 주력 산업도 배터리 위주로
바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제조 공정도 일부 비슷한데요.
제철은 철광석을 광산에서 캐서
고로에 넣고 석탄으로 태워서
철을 뽑아내는데요,
배터리도 핵심 소재인 양극재는
리튬 같은 광물을 광산에서 캔 뒤에
니켈 코발트 망간 같은 첨가물과 버무려서
고열로 구워냅니다.
광산에서 캐고, 뜨거운 열로 가열하고. 비슷하죠.
미국이 밀어주고 있다는 점은
포스코가 배터리 소재 사업을 하는 데
좋은 환경이죠.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IRA의 국회 통과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관심이었는데,
이 법안에선 배터리와 그 소재까지
중국산 제품을 배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이 만들었거나, 중국산 소재가 있거나
이런 배터리는 미국이 안 받겠다는 겁니다.
배터리는 현재 한국 중국 일본 3개국이
과점하고 있는 시장인데요,
미국 시장에서 중국이 빠지면
한국 일본만 남게 되겠죠.
일본은 파나소닉이 사실상 전부인데,
파나소닉은 테슬라에 의존합니다.
그러니까 GM 포드 같은 미국 회사와
폭스바겐 BMW 같은 독일 회사들은
한국 회사밖에 대안이 없어요.
배터리가 뜨는 산업인 것은 알겠는데
포스코가 잘할 것인지는 사실 또 다른 문제입니다.
주식시장에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포스코 계열사 중에 배터리 소재 사업을
하는 곳이 포스코케미칼입니다.
원래 이 회사는 제철소에서 필요한
내화물, 용광로 만들 때 쓰는 것이죠.
혹은 제철 과정 중 필요한 생석회
같은 것을 공급하는 회사였어요.

그러다 2019년 광양에 양극재 공장을
지으면서 본격적으로 배터리 소재
사업에 뛰어듭니다.
이 사업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냐면,
사업 시작한 지 3년 만인 2022년
양극재 매출 비중이 회사 전체 매출의
절반을 넘어갔습니다.
3년 만에 배터리 소재 회사가 된 겁니다.
포스코케미칼이 생산한 양극재는
거의 전량 LG에너지솔루션이 사 가고 있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양극재가 계속 부족해서
공장을 더 지어 달라고 포스코케미칼에
요청하고 있어요.
사실 양극재는 어딜 가도 부족해서
SK온이나 삼성SDI 같은 한국 회사들도
포스코케미칼이 준다고 하면
땡큐 하고 받겠다고 합니다.
물건이 남아도는 철강 산업과 완전히 딴판이에요.
포스코케미칼의 기업가치, 즉 시가총액은
약 15조원으로 국내 증시에서 20위쯤 합니다.
모기업 포스코 홀딩스가 24조원으로 13위인데,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습니다.
사실 매출만 보면 포스코케미칼은
연간 4조원도 안 되는데,
80조원을 넘어가는 포스코홀딩스와
비교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시장에서 철강 사업과 배터리 소재 사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아시겠죠.
포스코케미칼은 요즘 양극재뿐만 아니라,
음극재 생산도 늘리고 있는데요.
음극재의 주된 재료는 흑연이고,
이 흑연 대부분이 중국에서 생산이 되어서
음극재까지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원래 봤습니다.
중국이 워낙 잘하니까요.
그런데 포스코케미칼은 천연흑연이 아니라
인조흑연 형태로 중국과는 다르게
생산해서 최근에 미국에서 1조원어치
수주를 따내기도 했습니다.
양극재와 음극재를 함께 생산하는 회사는
한국에는 포스코 이외에 없고
세계에서도 중국 샨샨이란 회사 딱 한 곳뿐입니다.
포스코는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양극재에 들어가는 핵심 재료, 리튬까지
생산하려고 합니다.
포스코 홈페이지 배경인 아르헨티나 염호가
바로 이 리튬을 뽑아낼 수 있는 광산입니다.
포스코는 이 호수를 2018년 인수하고
2020년 리튬 추정 추정치를 컨설팅받았는데요,
매장량이 1350만톤에 이른다고 합니다.
전기차 약 3억대에 들어갈 엄청난 양이에요.
포스코는 실제 생산 가능량을 280만톤으로
보고 있는데요, 연간 10만톤씩 뽑아낼 예정입니다.
30년간 여기서 리튬을 생산하겠다는 겁니다.
포스코는 리튬, 니켈, 흑연 같은
핵심 광물부터 원료, 중간소재,
그리고 최종 소재에 이르기까지
배터리와 관련한 소재는 모두 하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배터리 이외에 또 다른 큰 사업도
진행 중인데, 바로 수소입니다.
포스코가 철을 만들 때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나온다고 했잖아요.
석탄 대신 수소를 쓰면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습니다.
철광석에서 철을 생산하려면 산소를
분리해야 하는데요,
지금은 석탄에서 발생하는 가스,
일산화탄소를 이용합니다.
이걸 수소로 바꾼다면, 전문 용어로 환원이라고 하는데
수소 환원제 철로 생산하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부산물로 나와요.
배기가스가 일절 없는 거죠.
포스코는 수소 환원 제철 방식으로
2050년까지 공정을 바꿔 나가겠다고
이미 선언했습니다.
또 여기에 필요한 수소도
직접 생산하기로 했는데요.
2050년까지 연 500만톤의 수소를
생산해서 수소로 연 30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이라고 비전을 밝혔습니다.
수소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지
구체적인 청사진도 내놨는데,
천연가스에서 뽑아내는 그레이수소,
이건 원래 하는 방식이고
이것뿐만 아니라 물을 전기분해 해서
생산하는 그린수소를 연 200만톤씩
생산하겠다고 합니다.
프랑스 소설가 쥘 베른이 쓴
신비의 섬에 보면 물이 석유처럼
연료로 쓰일 것이란 대목이 있는데,
포스코가 그걸 하겠다는 겁니다.
물론, 이건 좀 먼 얘기라 어떻게
실현을 할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포스코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이 바뀌곤 했는데요.
대일 청구자금으로 세워졌으니
정부에서 지분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정부 지분은 1도 없죠.
국민연금이 8.5% 보유하고 있는데,
이건 그냥 시가총액 비중대로
샀다 팔았다 하는 주식이라
정부 지분이라 볼 수도 없어요.
외국인이 51%나 보유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외국 회사라 볼 수도 없죠.
아무튼 문재인 정부 때 선임된
최정우 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퇴임 압력은 엄청나게 받고 있는데,
최정우 회장은 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버티면 정부가 내보낼 수단은 없습니다.
지난 9월에 태풍 힌남노가 포항에 상륙해서
포항제철소 고로가 49년 만에 처음
멈추는 사고가 있었는데요,
정부가 이 사고를 빌미로
최정우 회장의 사고 책임론을
제기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최정우 회장이 자신감 있게
경영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배터리 소재 분야로 사업을 빠르게 전환했고
성과를 내는 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경영 성과를 낸 경영자를
지분도 없는 정부가 몰아내긴 어렵겠죠.
배터리는 중국이 엄청나게 투자하고
광물부터 소재, 완제품까지 중국이
장악하려고 하는 분야인데요,
포스코가 부디 더 잘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기원합니다.
제철에서 세계 최고된 포스코,
배터리 소재에서도 세계 최고될 지
눈여겨보겠어.
기획 한경코리아마켓
총괄 조성근 부국장
진행 안재광 기자
편집 박지혜·김윤화·예수아·이하진 PD
촬영 박지혜·김윤화 PD
디자인 이지영·박하영
제작 한국경제신문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