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쌀로 최고의 빵 만든다"…국산 농산물로 승부 건 제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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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홍윤 베이커리 홍동수 대표 인터뷰“아무리 국산 농산물을 써도 결국 맛이 없으면 손님이 오겠습니까. 우리 쌀·보리·밀로도 충분히 최고의 빵을 만들 수 있습니다.”(홍동수 홍윤베이커리 대표)
가루쌀, 우리밀로 '빵지순례' 빵집 만들어
제빵 적성 안 맞았던 국산 곡물, 수백번 시도로 배합 비율 찾아
우리 농산물로 만든 빵 관련 특허만 5개
"가루쌀로 만든 빵 글루텐 없고 특유의 식감 좋아
생산 늘어 가격 경쟁력 생기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21일 전북 군산의 대표적 번화가인 수송동에 있는 홍윤베이커리엔 끊임 없이 손님이 이어졌다. 30대 주부부터 60대 노부부까지 손님들이 집은 빵 포장지엔 ‘가루미’, ‘보리진포’등 생소한 단어가 적혀있었다. 수입산 밀가루를 대체하기 위해 국산 가루쌀과 국산 보리로 만든 빵이란 뜻이다.홍윤베이커리는 인터넷 상에서 ‘군산 3대 빵집’이라 불리며 빵 애호가들에겐 소위 ‘빵지순례’의 대상인 곳이다. 아직 생산량이 많지 않은 가루쌀로 만든 이곳의 식빵 가격은 한 봉지의 6000원. 수입산 밀로 만든 일반 식빵 가격(3500원)의 2배에 육박하지만 저녁이 되면 매대가 텅텅 빌 정도로 인기가 좋다. 원가가 수입산의 2~3배인 국산 곡물, 특히 쌀가루로 밀가루를 이길 순 없다는 고정관념을 깬 광경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홍 대표는 “끊임 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한 결과”라고 말했다.
○두번 가게 옮기면서도 놓지않은 ‘우리농산물’
홍윤베이커리 한 켠엔 5개의 특허장이 세워져있다. 우리 농산물 고유의 특성에 맞춰 품질 높은 빵을 만드는 기술의 독창성이 인정 받은 결과물이다. 지난 9월 특허를 받은 현미 가루쌀로 만든 카스테라는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운 특유의 맛으로 이 가게서 가장 많은 매출고를 올리는 인기 메뉴다.
평범한 사람은 1개도 따기 힘든 특허를 5개나 가진 기술인이지만 그는 제빵인들 가운데서도 고학도로 꼽힌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한 뒤 생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17세가 되던 1984년 광주에 있는 전국구 유명 빵집인 궁전제과에 취직하며 제빵인생을 시작했다.일하며 주경야독으로 방송통신고를 졸업하고 제과·제빵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12년의 경력을 갖고 1996년 고향인 군산으로 돌아와 홍윤베이커리를 차리며 독립했다. 더 전문적으로 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전문대서 호텔조리경영학을 전공하며 기술을 연마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구 빵집의 우산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게 쉽진 않았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대기업의 자본력과 기술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동네 빵집의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군산 삼학동에 열었던 첫 가게를 옮겨 학생들이 많은 군산대 앞에 새 가게를 차렸고, 그곳에서도 장사가 수월치 않자 2012년 현재의 수송동으로 왔다.
홍 대표가 국산 농산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같은 어려움에서 비롯됐다. 홍 대표는 “프랜차이즈 빵집의 성장으로 많은 동네 빵집이 생존의 기로에 섰고 대부분은 유기농 재료를 쓰거나 수입산 밀가루로 유럽 현지의 맛을 재현하는 길을 선택했다”며 “나는 국산 농산물이 내가 프랜차이즈와 대결해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샘플 받아 시작한 가루쌀빵으로 ‘성공’
그가 국산 농산물에서 ‘해답’을 찾은 것은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1991년 정부가 추진한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통해 우리밀을 접한 뒤 국산 밀로 빵을 만드는 방법을 찾아왔다. 수백번의 시행 착오를 통해 나름의 배합법을 찾은 그는 구례의 특산물 판매장에서 직접 국산 밀을 사가며 빵을 만들었다.
군산에 자신만의 가게를 차린 후엔 쌀과 보리로 범위를 넓혀갔다. 일반 쌀을 불린 뒤 갈아 만든 습식 쌀가루와 군산의 특산물이었던 흰쌀찰보리로 빵을 만들며 국산 재료 비율을 30~40%까지 높였다. 홍 대표는 “수입산으로 빵을 만들수록 국내 농가는 어려워진다는 생각이 강했다”며 “하지만 맛을 내기 위해선 제빵에 적격인 수입산 밀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게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재료 국산화율이 50% 안팎에서 정체돼있던 2016년 농촌진흥청에서 온 전화 한 통이 그의 삶을 바꿨다.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2012년 농진청이 개발한 가루 전용 품종 ‘수원542’의 활용처를 찾던 장시연 당시 농진청 식량사업단 장시연 지도관이었다. 장 지도관을 통해 만난 수원542 개발자 정지웅 연구관이 홍 대표에게 그 때까지 개발된 4개 품종 샘플을 보내주면서 그는 가루쌀을 처음 접했다.가루쌀은 그가 기존 쌀빵에서 느꼈던 문제점을 상당 부분 해소해줬다. 홍 대표는 “꺼끌한 식감과 글루텐이 없어 잘 부풀지 않는 습식 쌀가루의 특성이 가루쌀에선 훨씬 적었다”며 “대신 쫀득한 식감이 더 살아났고, 글루텐이 없어 속이 편안한 특성은 그대로였다”고 말했다. 이렇게 하나 둘씩 홍윤베이커리엔 가루쌀로 만든 빵이 매대를 채워갔다.
농진청은 홍 대표가 빵을 만들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개선점을 바탕으로 수원542가 개량된 ‘바로미2’가 만들어졌다. 정부가 2027년까지 밀 수입량 10%(20만t)을 대체할 ‘전략 무기’로 내세운 바로미2의 탄생 배경이다.
홍 대표는 가루쌀을 비롯한 우리 농산물로 만든 빵의 잠재력을 강조했다. 그는 “가루쌀 원가가 현재 수입 밀가루의 3배지만 그만큼 제품 가격도 1.5~2배로 높다”며 “팔리기만 한다면 지금도 수익성이 더 높고, 대량 생산으로 가루쌀 가격이 떨어지면 경쟁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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