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 기술과 사진의 '예술적 만남'…2만점 역사가 숨쉬는 명품 수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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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건축물 열전
국내 유일 사진 전용 냉장 수장고
'뮤지엄한미 삼청'
기온 5도, 습도 35% 유지
소장품 생명 500년 늘려
사진 전용 냉장 수장고는
전세계에 10곳도 안돼
1867년작 '허버트 부인'
100년도 더 된 작품도
생생하게 보존 가능

지난 14일 찾은 서울 삼청동 뮤지엄한미 삼청(뮤지엄한미)의 ‘냉장 수장고’. 관계자가 기계장치의 버튼을 조작하자 잠시 후 기계장치 아래쪽 문이 열리며 1935년 촬영된 흑백사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87년 전 찍은 사진인데도 변색을 제외하면 마치 어제 찍은 것처럼 생생했다. 수장고 벽면에 걸린 줄리아 마거릿 캐머런(1815~1879)의 1867년 작 ‘허버트 부인’ 등 100년도 더 된 사진예술 걸작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진이 시간이 지날수록 열화(劣化)돼 쉽게 상할 수 있는 매체임을 감안하면 보존 수준이 놀라웠다.

국내 최고 사진미술관, 삼청동에서 재탄생
명작들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건 2000㎡ 너비, 3층 구조의 미술관 건물이다. 설계자는 김수근(1931~1986)의 제자인 민현식 기오헌 건축사무소장(76). 밖에서 보기엔 베이지색의 수수한 직사각형 건물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세 동으로 분리된 건물이 중정인 ‘물의 정원’을 둘러싸고 종횡으로 연결돼 있어 다소 화려한 인상을 준다. 건폐율과 용적률 등 건축 규제에 맞추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대표 사진 미술관’에 걸맞은 예술성을 지닌 건물이 됐다.
층마다 길게 가로로 난 창들은 삼청동의 다양한 얼굴을 여러 각도로 조망한다. 외부의 풍경을 공간 안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마침 기자가 찾은 14일은 삼청동에 ‘기습 폭설’이 내린 날. 창밖 설국으로 변한 삼청동 풍경이 사진 작품들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한미약품 ‘약재 보관 노하우’까지 도입
폭염과 혹한에도 언제나 저온 수장고는 15도, 냉장 수장고는 5도를 유지한다. 온도가 5도 낮아지면 보존기간이 두 배씩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를 토대로 결정한 숫자다. 상대습도는 두 시설 모두 35%다. 미술관 측은 “수장고 외장재를 보존성이 높은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드는 등 사진 보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고 자부했다.
수장고 너비는 317.4㎡로, 미술관 소장품이 2만여 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넓지 않다. 건축 규제 때문에 공간을 넓게 확보할 수 없었다. 미술관은 발상을 전환해 수장시설을 7m 높이로 쌓아 올렸다. 높이 때문에 보존과 정리가 힘들다는 단점은 모기업인 한미약품의 첨단 약재 보관 기술을 적용해 극복했다. 기계장치를 통해 작품을 꺼내고 다시 넣는 장치에도 한미약품의 기술이 적용됐다. 김 큐레이터는 “참고할 만한 해외 시설이 몇 없어 수장고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저온 수장고 벽 한쪽은 유리로 제작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저온 보존과 공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일반 관람객이 감상할 수 있는 ‘보이는 수장고’ 형태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곳에서는 국내 최초 사진가인 황철 작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 원본(1880년대)을 볼 수 있다. 작품이 일반에 공개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종의 초상 원본(1884년께), 흥선대원군의 초상 원본(1890년대)은 10년 만에 나왔다.
과거를 보존해 미래를 보는 공간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