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무엇을 할까요"…고객은 가치 창출 공동 주체

한경 CMO Insight

이유재 서울대 석좌교수의 경영학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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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 가치, 교환 가치, 사용 가치
이유재 서울대 석좌교수
가치는 누가 언제 창출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가치의 개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가치의 개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천해 왔다. 가치 개념의 진화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전통 경제학 관점에서는 가치가 상품에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 내재 가치(embedded value)라고 한다. 상품의 가치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창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즉 기업이 상품을 생산할 때 가치가 창출되었다고 보는 시각이다.

교환 가치…거래 마케팅

전통 경영학 관점에서는 상품이 생산되었을 때가 아니라, 상품이 교환될 때 가치가 창출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를 교환 가치(value-in-exchange)라고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간에는 물리적이나 시간적인 격차가 존재하는데 상품의 교환을 통해 이 격차를 줄이는 활동을 마케팅이라고 본다. 고객과의 거래를 통해 장소, 시간, 소유의 효용을 만들며 마케팅이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보았다. 즉 기업이 고객에게 상품을 판매할 때 가치가 창출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런 관점은 고객과의 거래를 강조하므로 흔히 거래 마케팅(transaction marketing)이라고 부른다. 거래 마케팅에서는 마케팅을 고객과 거래를 이루기 위한 활동으로 본다. 기업은 고객을 마케팅 활동의 대상이나 타깃으로 간주한다(marketing to customers). 기업이나 직원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What can I do for you?)”라는 자세로 접근한다.


사용 가치…관계 마케팅

최근 경영학 관점에서는 고객이 상품을 이용할 때 가치가 창출되는 것으로 본다. 이를 사용 가치(value-in-use)라고 한다. 사용 가치는 고객이 상품을 이용하면서 느끼는 주관적 효용이다. 기업은 가치를 제안할 뿐이고 실제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고객이 상품을 이용할 때라는 것이다. 마케팅은 고객의 가치창출과정을 지원하는 것이지,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가치의 실현은 고객이 상품을 이용할 때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다. 즉 고객이 상품을 소비할 때 가치가 창출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다.이런 관점은 고객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것을 강조하므로 관계 마케팅(relationship marketing)이라고 부른다. 관계 마케팅은 고객과 함께 하는 마케팅(marketing with customers)을 강조한다. 고객을 마케팅의 대상이나 타깃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고객을 가치 창출의 공동 주체라고 본다. 기업이나 직원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우리 함께 무엇을 할까요?(What can I do with you?)”라는 자세로 접근한다.


잠재 가치, 실현 가치

사용 가치의 관점에서도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다. 첫째는 잠재 가치(potential value)다. 잠재 가치는 상품이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전통 경제학 관점에서 사용한 내재 가치와 유사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실현 가치(realized value)다. 실현 가치란 상품이 사용되는 시점에서 고객의 욕구를 실제로 충족하는 정도를 의미한다. 예컨대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을 구매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콘서트는 한 달 뒤에 열린다고 가정해 보자. 교환 가치의 관점에 따르면 내가 돈을 지불하고 티켓을 구매한 순간 나에게는 이미 가치가 전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용 가치의 관점에서는 티켓을 구매함으로써 얻는 가치는 한 달 뒤에 있을 콘서트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잠재 가치다. 그러나 콘서트라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으므로 가치 실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달이 지나, 콘서트에 참석해서 공연을 즐길 때 비로소 가치가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한 가지 다른 비유를 들어 보자. 방안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공기중에 떠도는 파동은 사람의 귀 안으로 들어와 고막과 만나야 소리, 즉 음악으로 인식이 된다. 즉 공기중의 파동이 사람을 만나야 소리와 음악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 방에 아무도 없다면 공기중의 파동은 그저 파동으로 남을 뿐 아무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

또 컨설팅 프로젝트를 생각해 보자. 컨설턴트들은 몇 개월간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구두로 발표하고 보고서로 제출한다. 하지만 보고서가 그저 보고서로 끝나 버리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고객이 보고서를 읽고 그 내용을 실제로 활용할 때 비로소 컨설팅 서비스의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닐까? 똑 같은 컨설팅 보고서라도 고객의 역량과 활용 정도에 따라서 그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고객이 상품을 이용할 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몇 년간 중지했다가 개최한 부산국제영화제에 첫 장편영화를 선보인 김태훈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 영화의 완성”이라고.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들을 보고 나서야 영화가 완성됐다는 걸 비로소 실감했다는 것이다.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소비하는 것이다. 상품의 완성은 고객이 상품을 이용할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야 말로 상품의 가치가 실현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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