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켐바이오, 美 암젠에 1.6조원 기술수출

올해 국내업계 최대 규모

항체에 약물 달아 암세포 공격
ADC 플랫폼 기술 또 한번 성과
레고켐, 12건 수출 누적액 6兆
글로벌 ADC 메이저 업체로
국내 바이오기업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가 미국 대형 제약사 암젠과 1조6000억원대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항암 신약 분야에서 글로벌 선점 경쟁이 치열한 기술로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한국 바이오 기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 최대 바이오 기술수출

레고켐은 암젠에 ADC 플랫폼 기술을 수출하는 1조6050억원대 계약을 맺었다고 23일 공시했다. 올해 국내 바이오 기술이전 계약 금액으로는 최대다. 이번 계약으로 암젠은 레고켐이 보유한 ADC 플랫폼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5개 암종 대상 항암제를 개발·상업화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ADC는 유도미사일처럼 약물을 암세포에 정확하게 보내주는 약물 전달 기술이다. 탈모, 백혈구 감소 등 기존 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적은 투여량으로도 효과를 낼 수 있다.
이 때문에 ADC는 최근 제약·바이오업계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ADC 항암제의 선두주자는 아스트라제네카와 다이이찌산쿄가 공동 개발한 ‘엔허투’다. 유방암, 폐암 등의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유방암 환자의 경우 기존 치료제 대비 사망 위험을 50% 정도 낮췄다. 지난 6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암학회인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는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ADC 항암제 개발 경쟁도 뜨겁다. 2010년 23건이었던 ADC 임상 건수는 지난해 178건으로 급증했다. 시장도 급팽창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ADC 시장 규모는 올해 59억달러(약 7조5000억원)에서 2026년 130억달러(약 16조62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ADC 스타’로 떠오른 레고켐

레고켐은 국내 대표 ADC 개발사다. 지금까지 12건의 기술수출에 성공했다. 누적 계약금액은 6조4131억원에 달한다. 중국 포순제약이 진행한 이 회사의 유방암 치료제 후보물질 ‘LCB14’ 임상 1상에선 엔허투보다 적은 용량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냈다. ADC 투여 환자에게 많은 폐독성 부작용은 적었다. 세계 선두권 약보다 효과를 높이고 부작용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레고켐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ADC 플랫폼은 어떤 약물을 어떻게 항체에 매달지가 핵심이다. 약물과 항체의 연결부위(링커)가 부실하다면 약물이 암세포로 가는 도중 떨어지게 된다. 약물이 암세포에 잘 도착했다 하더라도 그 후 제대로 효력을 내지 못한다면 이 역시 의미가 없다. 레고켐은 이 모든 기술을 아우르는 ADC 플랫폼 ‘콘쥬올’을 개발했다. 회사 관계자는 “안전성 측면에서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며 “콘쥬올을 기반으로 ADC 항암 신약을 직접 개발하고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계약의 선급금 규모와 마일스톤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계약금이 실적에 반영되기까지는 1년여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레고켐 관계자는 “플랫폼 수출은 그 특성상 초창기에 많은 계약금을 받지 않는다”며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 상당 규모의 마일스톤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항체약물접합체(ADC)

면역세포인 항체에 약물을 붙여 암세포 등을 찾아가도록 만든 의약품. 공격 대상인 암세포 등에 정확하게 도달해 항암제 등 약물을 퍼뜨리기 때문에 정상 세포를 망가뜨릴 위험이 적다. 적은 양으로도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