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40대 황금기를 안겨준 딸 마야 피카소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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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와 16년 함께 한 여인 마리-테레스 발테르의 딸파블로 피카소의 딸 마야 루이즈-피카소(사진)가 지난 20일 (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폐 질환으로 별세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6일 보도했다. 향년 87세.
전쟁 다룬 걸작 '게르니카' 그리던 시기 태어난 마야
동심과 순수의 영감 준 피카소의 '뮤즈'
아버지가 가장 열정적이던 시기를 함께 보내
피카소 연구 등으로 프랑스서 훈장 등 수여
"연인도 남편도 아니었다, 피카소는 단지 아버지였다"
루이즈-피카소는 피카소의 공식적인 첫째 딸이다. 피카소가 첫 부인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 10년째를 맞이하던 46세때 만나 8년 간 혼외 동거를 했던 마리-테레스 발테르가 어머니다. 마야가 태어났을 당시 피카소는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에서 획기적인 작업을 하던 때였다. 마야는 그의 어머니와 함께 중년의 피카소에게 큰 영감과 기쁨을 준 존재였다. 피카소의 자녀들 중 가장 자주 묘사됐다.
스페인 도시의 폭격에서 영감을 받은 걸작 ‘게르니카’(1937)를 그릴 때와 같은 시기에 피카소는 세 살이 된 마야를 그림의 모델로 삼았다. ‘인형을 든 마야’와 ‘세일러복을 입은 마야’ 등 딸의 초상화를 다수 그렸다. 피카소가 새로운 연인을 만나 마야와 발테르를 떠나면서 부녀 사이도 멀어졌다. 1953년 마야의 18번째 생일 전날 그린 마지막 초상화를 끝으로 마야는 아버지와 거리를 뒀다. 하지만 피카소가 죽은 이후 마야는 상속인으로 지정됐다. 피카소가 가장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던 때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만큼 피카소에 대한 사실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가장 많았던 여인이다. 피카소는 생전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다. 마야는 다른 자녀들과 상속에 관한 복잡한 협상 과정을 거쳐 상속인으로 결국 인정 받았다. 고인은 아버지의 유산에 관한 연구와 노력을 법정에서 증명해 프랑스에서 2007년 레지옹 도뇌르 기사 작위, 2016년 예술문학 훈장 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상속 받은 그림과 아버지의 유산 등은 현재 미술사학자인 딸 비드마이어 루이즈-피카소가 관리하고 있다.
첫 만남 후 16년간 함께 한 뒤 홀로 남겨졌던 마야의 어머니 발테르는 1977년 피카소가 죽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마야와 그의 가족들은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2006년 영국 일간 더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에 관한 생각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정신 나간 두 부모 사이에서 내가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놀랍다. 알다시피 피카소는 내 남편도 연인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내 아버지였다.”
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