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남을 가르쳐 너와 똑같은 사람을 만들려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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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고등학교 1학년 때 성균관대학이 주최한 전국남녀고교생 문예 백일장에서 산문 부문 장원(壯元)을 했다. 시제(試題)는 ‘고양이’였다. 처음 참가하는 백일장이기도 해 떨기만 했던 기억만 난다. 뭘 썼는지 기억은 희미하다. 더듬어 기억을 되살려보니 ‘길 잃은 고양이가 혼자 사는 내 집에 들어와 적적하던 심사를 달래줬다’라는 글이었던 거 같다. 아버지에게 당시 문교부 장관 상장과 트로피를 보여 드렸을 때 크게 기뻐하셨다. 며칠 뒤 대학 신문에 실린 수상작을 읽으시고는 ‘잘 쓴 글’이라며 더 크게 기뻐하셨다. 좀체 하지 않는 칭찬도 하신 기억은 생생하다.
이듬해인 고등학교 2학년 때도 같은 백일장에 참가했다. 그날 백일장이 열린 성균관 명륜당(明倫堂) 앞에 걸린 시제는 ‘비’였다. 마찬가지로 뭘 썼는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그날도 내 글이 장원에 뽑혔다. 상장과 부상을 보여 드렸을 때 아버지는 지난해보다 더 크게 기뻐하셨다. 며칠 지나 ‘비는 인생이다’로 시작하는 내 수상작이 실린 신문을 읽은 아버지는 바로 크게 나무랐다. 그때 하신 말씀이다. “너는 아직 떡잎일 뿐이다. 떡잎이 드리운 그늘이 크면 얼마나 크겠느냐. 인생을 얘기할 나이가 아니다. 네가 쓸 일은 아니다. 억지로 쓴 글은 글이 아니다. 더욱이 그 글로 상을 받고 남들에게 읽게 했다면 패악(悖惡)이다. 이런 글을 쓰지 않을 용기도 있어야 한다.” 이어 아버지는 “세상에 너는 한 사람이면 된다. 너와 똑같은 사람을 만들려고 남을 가르치지 마라. 그에게는 그의 인생이 있다”고 하셨다.그날 아버지가 말씀 중에 인용한 고사성어가 ‘호위인사(好爲人師)’다. 무엇이든 아는 체하며 ‘남의 스승 되기’를 즐기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맹자(孟子) 이루상편(離婁上篇)에 나오는 말에서 유래했다. 원문은 “사람의 우환은 남의 스승 노릇 하기를 좋아하는 데 있다[人之患在好爲人師]”라고 지적한다. 모르는 것도 아는 척, 아는 것은 잘난 척하며 남을 가르치기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아버지는 길게 설명했지만 정리하면 두 가지 폐단을 지적하셨다. “발전이 없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만이 발전이 있고 그런 사람이라야 남을 가르칠 자격이 있다. 가르치려고만 드는 사람은 독선적이고 오만할 수밖에 없어 주위에 사람이 없다. 결국, 퇴보할 수밖에 없다.”
그날 이후 글쓰기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호위인사는 이미 아끼는 내 고사성어가 되었고 평생 걱정과 근심을 없애줬다. 겪어보니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가르치려 들거나 지시했다. 내가 모른다고 여기면 경청하고 배우기 마련이다.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이가 보면 나는 그저 떡잎일 뿐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넘치는 자신감은 자만(自慢)을 부른다. 자만심이 남의 스승 되기를 유혹한다. 자신감이 흘러넘치지 않도록 조절하는 성정(性情)은 손주에게도 물려줄 소중한 인성이다. 그걸 수시로 일깨워주는 고사성어가 호위인사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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