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채권·금융상품 '흔들'…각국 정부 규제는 늘었다

2022년 글로벌 ESG 동향

ESG 채권 판매액 8703억달러
전년보다 20%가량 덜 팔려
금융 상품들도 수익률 하락

'권장'에서 '의무'로 바뀌는 ESG
IRA 등 통해 무역장벽으로 활용
원자력은 '친환경 에너지' 분류
2022년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추진하는 기업과 금융회사에 녹록지 않은 한 해였다. 미국의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치면서 ESG 금융시장이 크게 위축됐다. ESG 채권 판매 규모가 처음으로 감소했고, ESG 우수 기업들을 담은 ETF(상장지수펀드)의 몸값도 20% 이상 떨어졌다. 각국 정부가 주도하는 ESG 관련 규제가 촘촘해졌다는 점도 눈에 띄는 변화로 꼽힌다.

ESG 채권 판매액 사상 첫 감소

27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0일까지 세계 ESG 채권 판매액은 8703억달러(약 1105조원)로 나타났다. 1조928억달러의 ESG 채권이 팔려나갔던 지난해보다 20%가량 판매액이 쪼그라들었다. ESG 채권 판매 규모가 줄어든 것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2년 이후 처음이다. ESG와 관련한 규제가 늘었고, 미국을 중심으로 ESG 투자에 부정적인 기류가 거세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모건스탠리와 바클레이스는 내년에도 ESG 채권 판매액이 1조달러를 밑돌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식 기반 ESG 금융상품들의 몸값도 일제히 내려갔다. 대표 상품인 ‘ARIRANG ESG가치주액티브’와 ‘KODEX 200ESG’의 최근 1년 수익률은 이날 기준으로 각각 -22.97%와 -22.21%다. 해외 ETF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Vanguard ESG US Stock ETF’(-23.96%), ‘iShares MSCI USA ESG Select ETF’(-21.22%) 등의 최근 1년 수익률은 -20% 선이다.

제도화되는 ESG

몇 년 전까지만 해도 ESG는 기관투자가들의 이슈였다. 장기 투자를 위해선 환경과 사회, 지배구조에 문제가 없는 종목을 골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ESG 관련 지표를 유심히 들여다본 것이다. 최근엔 분위기가 달라졌다. 각국 정부가 관련 규제를 늘리면서 ESG가 글로벌 기업의 의무사항으로 바뀌는 모양새다.지난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후정보공시 기준’ 초안을 공개하고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관련 공시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미국 증시 상장사들은 온실가스 배출량 등 기후 관련 지표는 물론 기후 관련 위협을 어떻게 관리할지 등을 공시로 알려야 한다. 국제회계기준(IFRS) 재단이 만든 국제지속가능성 기준위원회(ISSB) 역시 최근 공시 의무화를 위한 기준 초안을 내놓았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ISSB의 권고안을 토대로 ESG 공시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ESG를 무역장벽으로 활용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이 최근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대표적 사례다. 7730억달러(약 983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기후변화 대응 등에 지원하는데 정부 보조금을 받으려면 생산기지가 미국에 있어야 한다. 원료나 소재도 미국 혹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의 것을 써야 한다.

유럽연합(EU)은 더 노골적이다. 최근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이 EU가 정한 기준을 넘으면 초과분을 세금으로 내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도입에 잠정 합의했다.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 등 6개 품목이 대상이며 내년 10월부터 준비기간에 들어간다.

“원자력발전은 친환경 사업”

개발도상국의 기후 재난 피해를 선진국이 일정 부분 보상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최근 개최된 제27차 유럽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선 이런 내용을 담은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가 공식 의제로 채택됐다. 향후 구체적인 재원 조달을 위한 국가 간 격론이 예상된다.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친환경 에너지’의 자격을 얻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 7월 EU 의회는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사업 범위에 포함한다는 내용의 ‘택소노미(녹색 분류체계)’를 확정했다. 한국 역시 원자력발전을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친환경 비즈니스로 분류했다.

송형석/이주현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