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민연금 신임 CIO의 불안한 취임일성

소유 분산기업 인사에 작심발언
좌고우면 말고 수익성 집중해야

류병화 증권부 기자
“자본시장에서 영향력이 막강한 국민연금 최고투자책임자(CIO)가 취임 일성으로 개별 기업 인사에 대해 거론한 건 매우 위험한 처사입니다. 게다가 지난번 김태현 이사장 발언 내용과 짜 맞춘 듯이 같아서 앞으로가 참 걱정이네요.”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서원주 신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지난 27일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소유 분산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대해 작심 발언을 쏟아낸 직후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짧게 상견례하는 자리”라던 예고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할 말을 적어 놓은 흑갈색 노트 한 권을 챙겨 간담회 장소에 등장한 서 본부장은 특정 대주주가 없는 KT와 포스코, 금융지주사의 CEO 선출 관행을 이례적으로 비판했다.이 자리에서 그는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다섯 차례 언급했다. 이사장을 이렇게 자주 거명하는 CIO는 흔치 않다. 국민연금 이사장과 CIO는 공식 석상에 같이 나타나지 않는 게 불문율일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다. 게다가 이달 초 김 이사장이 100일 기념 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반복해 강조했다.

서 본부장은 10분 남짓 진행된 간담회에서 절반 넘는 시간을 소유 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할애했다. 엄중한 시장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이겨낼 자산배분 및 투자 전략에 대해선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 올해 국민연금은 4년 만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할 위기에 처했다. KT와 우리금융지주 등 눈앞에 닥친 일부 기업 인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의도가 아니었다면, 소유 분산기업 CEO 인사가 이렇게 다급한 일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전임 안효준 본부장이 취임한 2018년은 문재인 정부 주도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하고 주주권 행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고조됐던 때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안 본부장은 취임 일성으로 수익률만 거론했다. 수익성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6대 운용 원칙 중 제1원칙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주주가치 제고에 긍정적일 수 있으나 수익률 상승의 여러 부수적인 요소 중 하나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대형 투자기관 운용역들은 태생적으로 조심성이 많은 편이다. 오해의 소지가 생길까봐 단어 선택에도 신중을 기한다. 서 본부장도 마찬가지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평가를 내린다. 서 본부장이 과도한 충성심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34년 운용역의 자부심으로 투자 성과 달성에만 몰두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