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옥 코리아나 회장 "한국적 아름다움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게 내 소명"

50년간 모은 유물 5000여점 기증해 온
유상옥 코리아나 회장

고려청자·미인도 등 유물 수집
월급 타면 인사동 화랑가 뒤져
아흔에도 매일 출근해 결재
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페이스씨에 있는 유상옥 코리아나 회장(사진)의 집무실 탁자에는 ‘언제 적 것일까’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토기 두 점이 놓여 있었다. “삼국시대 토기예요. 박물관에 기증할 예정입니다. 혼자 두고 보기엔 아깝잖아요.”

28일 이곳에서 만난 유 회장은 너털웃음을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올해 구순인 그는 50년 넘게 모은 유물과 미술품을 전국 각지의 박물관과 지역사회 등에 기증해왔다. 기증품은 5000점을 훌쩍 넘는다.유 회장은 지난 10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 ‘2022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 시상식에서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9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은 데 이어 두 번째 수훈이다. 한 번도 어려운 문화훈장을 두 번이나 받은 것은 유 회장이 평생 이어 온 ‘문화보국’ 행보 덕분이다. 그는 2009년 개인 소장 유물 2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비롯해 모교인 덕수고 100주년 기념관, 청양군 백제역사문화체험박물관 및 농업박물관, 코리아나법인 등에 5400여 점의 소장 유물과 미술품을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 당시, 유 회장이 박물관 직원들에게 “골라서 가지고 가십시오”라며 유물 보관 장소 문을 활짝 열어준 일화는 유명하다. 그 덕분에 유 회장이 소유하던 고려청자 등 귀한 유물들을 일반 국민이 같이 누릴 수 있게 됐다.

유물을 계속 사 모아 박물관에 기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유 회장은 “전통의 가치를 전문가들이 보전하고 연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답했다. “유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역사적 가치를 혼자만 소유하지 않고 모두와 공유하고 싶다”는 게 그의 얘기다.유 회장은 “수십 년 전부터 화장품사업을 하며 해외를 돌다 보니 국가의 힘은 경제와 문화에서 나온다는 것을 통감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열심히 이룬 경제대국 10위라는 지위를 뛰어넘어 한국의 국격이 한 단계 더 높아지기 위해선 문화를 알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회장이 유물과 미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69년 동아제약 기획실장 시절부터다. 그는 동아제약 공채 1기로 입사해 30대 중반 임원에 올랐다. 당시 동아제약 창업주인 고(故) 강중희 회장이 외국 손님을 위한 선물을 고민하던 때, 유 회장이 전통 다기를 구해왔다. “제법 눈썰미가 있다는 칭찬을 들었지요. 선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져 해외 비즈니스 결과가 좋았습니다.”

유 회장은 이때부터 유물과 미술품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월급을 타면 인사동 화랑가를 돌며 작은 작품들을 사 모았다”고 회상했다.1988년 코리아나화장품을 창업한 후에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알리는 것이 소명이라고 여겼다. 2003년 국내 최대 화장박물관인 코리아나화장박물관과 코리아나미술관으로 구성된 스페이스씨를 설립한 배경이다. 그는 한국 전통 화장도구뿐 아니라 국내외 미인도를 수집해왔다. 이를 토대로 국내를 비롯해 프랑스 영국 일본 중국 등에서 ‘한국의 화장문화전’을 열었다.

유 회장은 아직도 경영활동에 참여한다. 평일 매일 출근해 업무를 보고받고 주요 안건에 결재한다. 그는 “건강관리 비결은 일을 계속하는 것과 양재천을 걷는 것”이라며 “아직 일할 수 있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글=하수정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