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2.0…고숙련 외국인근로자 체류기간 10년으로 늘린다(종합)

제도 시행 18년만에 손질…택배 상하차 직종에도 외국인력 도입
단기간 파견근로 허용, 외국인 가사·아이 돌봄 서비스 추진
정부가 내년부터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발급받아 한국에 들어와 일하면서 장기간 숙련도를 쌓은 외국인 근로자의 체류 기간을 최대 '10년+α'까지 대폭 늘리기로 했다.또 농업·제조업·건설업 등 일부 업종에 제한했던 외국인 근로자 취업 대상 분야를 택배 상하차 직종으로 확대하고 3개월 이내의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등 외국인력 도입 유형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외국인 근로자 규모는 올해 6만9천명에서 내년 11만명으로 늘어난다.

고용노동부는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 대한 브리핑을 열고 이런 방침을 밝혔다.고용허가제는 국내 인력을 구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2004년 도입한 제도다.

이에 따라 베트남·필리핀 등 인력송출 업무협약(MOU)을 맺은 국가 출신으로 농업·제조업·건설업 등 비전문 직종에 취업하려는 외국인에게는 외국인력 도입 쿼터 범위 내에서 E-9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정부가 고용허가제 큰 틀을 손질하는 것은 제도 시행 이후 18년만으로, 그동안 산업구조 변화로 늘어난 숙련인력 수요에 대응하고, 초저출생·고령화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외국인 근로자들로 일부 메운다는 의미가 있다.
◇ 고숙련 외국인력 체류기간 늘린다…4년10개월→10년+α
현행 제도에서 E-9 비자의 체류 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 외국인 근로자는 출국 후 다시 고용허가를 받아야 했고, 사업자는 장기간 근무한 숙련 외국인력을 활용하기 어려웠다.

이에 노동부는 같은 사업장에서 장기간 근속한 외국인 근로자에게 특례를 부여하기로 했다.제조업의 경우 한국에 들어온 후 처음 취업한 사업장에서 24개월 이상 근무한 외국인 근로자, 사업장을 옮겼을 경우 한 곳에서 30개월 이상 일한 외국인 근로자를 장기근속자로 인정한다.

제조업 외 업종, 직업훈련을 이수한 경우에는 경력 요건이 단축된다.

다만 사업주의 잘못으로 이직한 경우 다른 사업장에서 장기근속 기간을 채워도 된다.

한 사업장에서 장기근속했다고 무조건 특례를 적용받는 건 아니다.

법무부가 운영하는 사회통합교육 프로그램을 3단계 이상 이수하고 한국어능력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얻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한 외국인 근로자는 최대 10년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게 된다.

특례 기간은 법무부와 논의를 통해 늘어날 수도 있다고 노동부는 설명했다.

한국에서 일정 기간 이상 일했고 숙련요건을 구비한 외국인 근로자의 경우 E-9 비자를 '외국인 숙련기능 점수제 비자'(E-7-4)로 전환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E-7-4 비자로 전환할 때 요구되는 체류 기간 요건은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발표를 고려하면 현행 5년에서 4년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 택배 상하차 등 일부 서비스 업종으로 확대…단기간 파견근로 허용, 외국인 가사 돌보미도
노동부에 따르면 2011년 이후 E-9 고용허용 업종에 변화가 없었지만, 최근 물류창고업·물류유통업 등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E-9 허용 업종 확대 요구가 커졌다.

이런 요구를 반영해 농업·제조업·건설업 등 업종에 제한됐던 E-9 비자가 서비스 업종의 택배 상하차 직종에도 시범적으로 발급되는 등 고용허가 기준이 다양해진다.

사업장별 신규 고용허가서 발급 한도를 폐지하고, 상시 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허용된 외국인력 고용 규모도 내년 말까지 20% 늘린다.

일시적인 인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3개월 이내의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등 외국인력 활용 방식도 다변화한다.

또 가사 돌봄의 경우 정부 공인을 받은 업체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시범 운영함으로써, 사각지대에 있던 외국인 가사 돌봄 노동자를 관리하면서 서비스 품질을 제고한다.

특히 여성 중고령 노동자가 대부분인 가사 돌봄 노동시장에서 내국인 고용이 감소할지를 살펴볼 계획이다.

아울러 전문인력 비자(E-7)를 받지 못한 유학생에게 E-9 비자를 발급하고 전문인력으로 양성한다.

이외에 2017년 25만명에서 올해 11월 기준 41만명으로 늘어난 외국인 근로자 불법체류를 줄이기 위한 사업도 실시된다.

예컨대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현지에서의 직업훈련을 강화하고, 체류 기간이 만료되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취업 희망 분야에 대한 직업훈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임금을 낮추기 위함이 아니라 내국인을 구할 수 없어 외국인을 구하는 '진짜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인력수급 관련 독립 자문기구를 설치하고, 주기적으로 인력 부족 업종의 수요를 조사할 계획이다.

노동부는 "고용허가제를 시행한 2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제도의 틀을 유지해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라면서 "내국인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인력난을 해소하는 균형점을 찾는 '고용허가제 2.0'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입국 후 첫 3년 동안 사업장 변경을 3회까지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하면서 외국인 근로자 인권이 침해된다'는 지적에는 "노동계와 경영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 18년만의 손질…"비전문 외국인력 숙달시켜 생산성 제고될 것"
고용허가제를 개편하기로 한 것은 그간 체류 기간을 제한적으로 운영하면서 비전문 외국인 근로자가 숙련도를 쌓지 못했고, 이로 인해 외국인력을 주로 활용하는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 한국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28.7%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약화한 성장 잠재력을 일정 부분 메우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노동부는 앞서 내년 고용허가 규모도 역대 최대인 11만명으로 늘렸다.

2004년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이래 E-9 비자가 발급된 외국인 근로자는 2008년 7만2천명, 2011년 4만8천명, 2014년 5만3천명으로 증감을 반복하다가 2017∼2020년 5만6천명으로 유지됐다.

작년은 5만2천명, 올해는 6만9천명이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작년 0.81명이었다.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저치로,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유일하게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이었다.

디지털 전환 등 산업구조 변화로 인해 숙련인력 수요가 늘어난 점도 문제다.

전문가들은 이번 개편으로 숙련기능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전문 외국인력을 숙달시킴으로써 기업의 생산성을 제고할 것"이라면서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를) 지역별, 업종별로 안배하기 때문에 숙련기능인력을 맞춤형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