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차가 '집채만 한 컨테이너' 싣고 도로주행…18t 슈퍼컴이 화학실험

세계는 지금 DX혁명
2부 (6·끝) 세계 1위 화학기업 獨 바스프의 '페어분트'를 가다

디지털 실험장 된 화학단지 '페어분트'
전통산업에 IT 기술 접목으로 대변화
인공지능이 생산설비 교체 주기 예측
폐기물 93% 재활용…에너지 효율화도
독일 화학업체 바스프의 핵심 생산단지 페어분트에서 자동 무인운반차(AGV)가 액체화물 컨테이너를 운반하고 있다. /바스프 제공
파이프들이 복잡하게 얽힌 게 실핏줄처럼 보이기도, 신경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단지 정문에서 차량으로 10분을 더 달리자 ‘스팀 크래커(기초유분 생산설비)’에 도착했다. 석유와 가스를 증기로 분해해 화학제품의 기본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을 생산하는 페어분트의 ‘심장’이다.

여기서 생산된 기본 원료들은 파이프라인을 타고 개별 생산시설로 이동, 수백 가지 중간재로 가공된다. 중간재는 다시 파이프라인을 통해 분배된 후 생산시설을 거쳐 수천 가지의 화학 원료로 재탄생한다.공장 전체가 마치 거대한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였다. 초대형 생산시설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디지털 기술이다. 결합·연결을 뜻하는 독일어인 페어분트(Verbund)는 수백 개의 공장이 파이프로 연결된 바스프 특유의 생산 시스템을 일컫는다. “모든 자원을 낭비 없이 최적의 효율로 활용한다”는 이 시스템은 바스프가 세계 최고의 화학회사로 성장한 원동력이자, 전 세계 화학공장의 표준 모델로 평가받는다. 루트비히스하펜 페어분트의 면적은 축구장 1400개와 맞먹는 10㎢로, 200여 개의 생산시설이 밀집해 있다.

거대한 화학 제조시설은 ‘2차 산업혁명’의 상징 같은 존재지만 ‘4차 산업혁명’ 세례를 받으며 뼈대를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대대적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말 그대로 환골탈태(換骨奪胎)가 벌어지고 있다.

바스프는 최근 디지털 대전환(DX) 흐름에 맞춰 전통 산업에 정보기술(IT)을 접목, 생산효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집채만 한 액체화물 컨테이너를 싣고 현장을 분주히 움직이는 자동 무인운반차(AGV)가 좋은 예다. 바스프는 AGV를 제어 및 모니터링하기 위해 HD 카메라 신호를 송수신하는 4세대 이동통신(LTE) 네트워크를 페어분트 전역에 깔았다. AGV가 페어분트 내 150개의 하역장에서 효율적으로 움직이면서 전체적인 생산 효율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남서쪽으로 이동하자 주변 생산시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세련된 건물이 나타났다. 바스프가 2017년 화학업계 최초로 도입한 슈퍼컴퓨터 ‘큐리오시티’의 서버실이 있는 곳이다. 무게만 18t에 달하는 이 슈퍼컴퓨터는 다양한 분자를 조합해 새로운 화합물을 개발하는 연구개발(R&D)에 주로 쓰이고 있다. 실험실 수준의 기술이나 설비를 대규모 생산 설비로 확대하기 위한 공정 시뮬레이션 역시 큐리오시티의 주요 임무다.
그래픽=신택수 기자
1865년 루트비히스하펜 라인강 인근에서 작은 염료 공장으로 출발한 바스프는 157년간 질소 비료, 스티로폼 등 산업 패러다임을 뒤바꾼 제품을 선보인 세계 1위 화학기업이다.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두고 약 4만5000개에 달하는 방대한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 세계에서 벌어들인 매출은 786억유로(약 110조원)에 달했다.

바스프는 2015년 ‘바스프 4.0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기존 화학제품 생산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다섯 가지 디지털 테마를 제시하는 등 변신을 모색했다. 예지보전,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증강현실, 빅데이터를 활용한 공정 분석, 디지털 도면, 사업 영역의 수직적 통합 등이다.디지털 기술은 화학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는 데도 활용되고 있다. 효율적인 에너지 사용 관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루트비히스하펜 페어분트는 개별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폐기하지 않고, 다른 생산시설 원료로 재사용한다.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활용한 자가 발전소를 통해 공장에서 필요한 전기의 70% 이상을 자체 조달하고 있다. 이 덕분에 페어분트의 에너지·자원 효율은 93%에 이른다. 버려지는 부산물은 약 7%에 그친다.

바스프는 그동안 수직·수평적인 계열화를 통한 통합 생산체계로 생산 효율을 극대화했다면, DX 시대 흐름에 맞춰 데이터에 기반한 운영모델로 복잡한 시장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플로리안 파비안 바스프 루트비히스하펜 미디어 책임은 “디지털 정보기술을 생산 현장뿐만 아니라 물류, R&D, 시장, 고객 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루트비히스하펜=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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