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40년 남산 힐튼호텔, 역사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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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퇴실 손님 끝으로 영업 중단40년 역사의 밀레니엄힐튼서울(남산 힐튼호텔)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1983년 당시 대우개발이 준공해 문을 연 남산 힐튼호텔은 31일 오전 퇴실하는 손님을 마지막으로 영업을 중단한다. 이 호텔을 인수한 이지스자산운용은 건물을 허물고 오피스, 호텔, 상가 등으로 구성된 복합시설을 2027년 완공할 계획이다.
이지스자산운용, 건물 허물고
오피스·호텔 등 복합시설 짓기로
韓건축가가 지은 '국내 1호 호텔'
펜트하우스는 김우중 회장 집무실
DJ 서거 때 북한 조문단 투숙도
○영욕의 대우 역사 함께해
남산 힐튼호텔은 옛 대우그룹의 흥망성쇠를 상징하는 호텔이기도 하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그룹이 급성장하던 1983년 이 호텔을 준공했다. 1978년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한 이 호텔은 ‘한국 건축가가 지은 국내 1호 호텔’이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김 전 회장은 미국에서 활동하던 김 건축가에게 설계를 부탁하기 위해 직접 미국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 꼭대기 층인 23층 펜트하우스는 김 전 회장이 개인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사용했다.1997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대우그룹이 부도 위기에 처하자 대우개발은 1999년 싱가포르계 투자기업 CDL호텔코리아에 남산 힐튼호텔을 매각했다. 대우그룹은 2600억원에 호텔을 매각하면서도 23층 펜트하우스만큼은 대우개발이 장기 임대하는 형식으로 관리했다.
김 전 회장의 부인 정희자 씨는 이 호텔을 경영하면서 경제계를 대표하는 여성 경영인으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씨는 1983년 12월 7일 남산 힐튼호텔이 개관한 뒤 1984년 1월 대우개발 회장으로 취임해 매각할 때까지 호텔을 직접 경영했다. 김 전 회장이 호텔 매각을 결정하자 남편 앞에서 대성통곡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진 일화다.
○한국 경제 성장의 상징
이곳에서는 굵직한 행사도 많이 열렸다. 특히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찬을 자주 연 것으로 알려진다. 전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노태우 당시 민주정의당(민정당)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뒤 이곳에서 축하연을 열었다. 1988년 2월 퇴임 만찬 역시 여기서 진행했다.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미국 방송 중계진이 남산 힐튼호텔에 머물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미셸 캉드시 제7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곳에서 묵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는 북한 조문단도 투숙했다.CDL호텔코리아는 2004년 호텔 운영업체 밀레니엄과 계약을 맺고 호텔 이름을 밀레니엄힐튼서울로 바꿔 재개장했다. 이후 코로나19로 호텔이 경영난에 직면하자 지난해 12월 국내 자산운용업체인 이지스자산운용에 1조1000억원에 매각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현재 건물을 허물고 이 자리에 오피스, 호텔, 상가 등으로 구성된 복합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호텔 내부에 있던 세븐럭 카지노는 ‘세븐럭 강북힐튼점’에서 ‘세븐럭 서울드래곤시티점’으로 이름을 바꿔 용산 서울드래곤시티로 자리를 옮긴다.드래곤시티 내 이비스호텔 5층 그랜드볼룸에 문을 여는 새 카지노 업장의 면적은 지금보다 약 20% 넓어진다. 남산 힐튼호텔에서 1983년부터 2014년까지 32년간 근무한 박효남 세종사이버대 조리서비스경영학과 교수는 “남산 힐튼호텔은 한국 호텔·관광 산업의 성장을 함께한 곳”이라며 “국제적인 행사도 많이 개최한 만큼 국가 경제 성장에 크게 일조한 의미 있는 호텔”이라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